김지낭 교수의
김지낭 교수의 "AI 시대에 앞서는 기독교"

"AI 시대에 앞서는 기독교" 

 

테크노스피리추얼리즘이 기독교 신앙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는 인공지능이 성경 공부, 예배, 기도 알림등 개인 맞춤형 신앙 생활을 돕는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존 파이퍼 (John Piper) 목사는 인공지능이 영적 성장을 돕는 순기능을 갖고 있으나, 기술이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대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인공지능의 사용과 개발에 있어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의 사용이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는, 즉 기술이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을 존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앙 생활의 기술 의존, 영성의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워싱턴 연합신학원 교회사 교수인 일리아 델리오(Ilia Delio)는 종교 챗봇을 "신에게 다가가는 지름길 ("shortcuts to God")이라고 묘사하며, 오랜 기간 성경과 교류하며 얻는 영적 이점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터프츠 대학교(University)의 기술 윤리학(Technology Ethics) 연구원 토마스 아놀드(Thomas Arnold)는 "종교적 챗봇들에게 어떤 종류의 계시적 성질을 부여하여 돈을 벌거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유혹이 있을 것" 이라며 주의를 요하기도 한다.

인공지능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우려는 타당한 점이 있다. 특히, 일리아 델리오가 쳇봇을 "신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이라고 표현한 말은, "속도"에 민감한 현대인들이 신앙 생활에서 보이는 성급함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성경 공부나 상담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즉각적 접근성(instant access)" 에 있다. 속도전이 되어버린 매일의 삶 가운데, 우리는 기도의 응답, 내면에 떠오르는 질문들에 대해 즉각적인 답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대답을 기다릴 인내가 없어진다. 우리 안에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인간의 때에, 램프 속 지니를 부르 듯 하나님께 답을 요구하는 왜곡된 욕구가 잠재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영적으로 반응한다. 하나님은 인공지능이건 안드로이드 로봇이건 어떤 도구도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술은 그저 도구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이를 우상화하거나 미혹의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와 존 파이퍼 (John Piper) 목사가 주장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인공지능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도록 사용하여야 한다. 인공지능을 단순히 인간의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삼을 때 타락하게 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결국 문제는 인간에게 종착 된다. 인공지능이 악한지 선한지의 문제라기 보다 결국 개발자, 관리자, 또는 사용자로서 인간이 도구를 도구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영혼과 신성까지 모방하려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거대한 바벨탑을 쌓는 행위이든 그렇지 않든, 세상은 성경 말씀대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결국 우리가 이 때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가, 도구를 우상화 하여 금 송아지처럼 섬기거나, 미혹에 빠져 미로 속을 헤매며 믿음을 잃지 않도록 깨어 있는가에 있다. 이어령 박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인간과 천리마(馬)에 비교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인공지능에 올라타 고삐를 쥐라고 한다.

인공지능의 정체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혼재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 인공지능이 신앙 생활에 미치는 영향, 무분별한 오남용 방지를 위한 지혜를 구하고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인공지능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한 것 같다. 구원의 길이 하나이 듯, 우리는 양의 문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것. 삶의 모든 부분이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는 나의 미래이다. 하나님을 "사무치게" 사랑하며 오늘을 살아 내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면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나에게는 이 말씀이 사랑하는 님의 목소리이며 미래의 한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