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6월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시애틀의 아침저녁이 춥습니다. 그렇지만 아침마다 맞이하는 맑은 공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내가 가지지 못했으나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에 또한 감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형제와 제가 되기를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저를 '작은 거인'이라고 소개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결코 키가 작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적 거인, 이러면 될 것을 굳이 키를 언급하며 거인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단체 사진을 찍은 것을 받아 보았는데, 제가 진짜로 다른 사람들보다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라던 시절은 모두 키가 고만고만한 시대였고, 저보다 큰 키의 친구는 몇 되지 않았었는데 저보다 젊은 사람들의 키가 더 커지면서 제가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 키로 이제까지 큰 불편 없이 살았고, 키 큰 사람이 필요한 일은 그런 사람 불러서 하게 하면 되니 그냥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나누는 말씀 속에 나오는 삭개오가 작은 키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작은 것이 아니라 아마 장애라고 여겨질 정도로 작은 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으로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부모의 죄이든지 본인의 죄라고 여겨지던 때라 그는 죄인이라는 굴레를 쓰고 한평생을 살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상처에 대한 보상 심리로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증오하는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악명높게도 세리장이라는 고위직에 오르게 될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치를 떨게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의 소문이 들려왔고, 그분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작은 키로 인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도 없었고, 세간의 이목 때문에 당당히 나서서 예수님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뽕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멀리서나마 예수님을 바라보되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었습니다.

그런 속도 모르고, 예수님은 그 나무에 오셔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아무도 모르게 올라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아셨고, 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에게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가서 밥 먹겠다 하십니다. 삭개오는 장애인이고, 사람들의 눈에 죄인이고, 민족의 반역자인 세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와 말을 섞는 것조차 꺼리고, 심지어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가진 마음의 상처를 단번에 치유하여 주십니다. 내려와라 가서 같이 밥 먹자!

삭개오는 이후에 아주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정하여 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인정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 뽕나무 위에 올라간 마음을 알아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와 같은 상에 앉아 식사하셨습니다. 그의 삶은 열등감으로 찌들어 다른 사람을 찍어 누르며 올라서려 하던 사람이 아니라, 서로 돌아보아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돕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형제를 괴롭히고 있는 상처는 무엇입니까? 신체적, 정신적, 아니면 영적 장애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형제를 사람들 앞에 와 예수님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게 합니까? 오늘도 그런 형제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다정한 음성을 들으시고,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형제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