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역의 현장이었다”

발렌시아 샘물교회가 오는 6월 9일(주일) 가 20주년을 맞아 창립감사예배 및 임직예배를 드린다. 발렌시아 샘물교회를 개척한 이건창 목사를 만나 소감과 앞으로의 비전과 다짐에 대해 들어 보았다.

20여년 전 알칸사스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있을 때, 한 질문이 찾아와 그를 두드렸다.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말도 안되는 금액을 학비로 내며 공부를 하고 있던 그는, 그 모든 게 기적처럼 느껴졌고, 하나님이 왜 자신을 미국에 보내셨을까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시기 위해 미국에 보내셨다는 것이었다.

올해 20주년을 맞는 발렌시아 샘물교회 이건창 목사는 이렇게 분명한 하나님의 콜링으로부터 그의 목회가 시작되었다고 회고했다.

‘100퍼센트 복음, 100퍼센트 성경을 선포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산타크라리타 지역에 교회를 개척한 그는 첫 가정이 전도 되어 나오면서 새벽기도를 시작했고, 개척을 하면서 사람이 오건 안 오건 화요일 저녁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이전 교회에서 EM 사역을 할 때 왔던 성도가 교회를 찾아와, 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공부에 참석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없는 켄터키 주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미국교회에서 배운 것들과 라크라센터에서 EM 목사로 섬기며 배운 것을 함께 녹여, 1세뿐 아니라 영어권 자녀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목회를 하려는 비전을 품었다. 최대한 영어권과 소통을 이어가려 노력했고, 이에 국제 결혼한 부부들, 2세들이 찾아왔고, 교인수가 많지 않을 때에도 영어권 전도사가 함께 사역했다.

20년의 사역,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뭔가를 이루고 성취하고 그런 것도 몇 개는 있는데 솔직하게 나누고 싶은 것은 제가 저희 교회 사정을 설명하다가 ‘저희 교회가 작잖아요’라고 했는데 한 집사님이, 바로, ‘우리 교회 작지 않아요. 되게 큰 믿음의 교회예요.’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또 1년 후에 비슷한 얘기를 나누다 또 다른 한 분도, 저에게 바로, ‘우리 교회 작지 않아요. 대게 큰 믿음의 교회예요’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시는구나를 확신할 수 있었다.”

작은 교회라는, 그가 은연중에 품고 있던 생각을 바로 잡기라도 하듯 성도들이 먼저, ‘큰 믿음의 교회’라고 정정해 주었다.

얼마전 CTS에서 이민성도들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민자가 줄고, 이민교회가 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민자/유학생 감소, 교회가 세상의 변화에 잘 따라가지 못함, 교회의 세속화 등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미주 한인교회가 축소될 것이는 대한 암울한 전망에, 이건창 목사는 다시한번 모든 것을 이기는 것, 즉 복음의 능력에 대해 강조했다.

‘하나님, 저를 개척교회 무덤 같은 곳에 저를 보내신 거예요?’
2015년, 한인들이 지역을 떠나자, 우리 교회가 사라질 것 같다는 위기 의식 느끼기도

“저희가 개척한 것이 2004년, 발렌시아 지역에 붐이 시작되어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한인 커뮤니티도 많이 유입되던 때였다. 인구가 유입되면서 교회가 3년 사이에 16개까지 늘어났는데 2015년을 지나면서, 교육 문제가 해결 된 분들이 많이 떠나 지금은 교회가 5개로 줄었다. 갑자기 교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교회가 7-8개 쯤 되었을 때, 새벽예배 하러 가는 길에, ‘하나님, 저를 개척교회 무덤 같은 곳에 저를 보내신 거예요?’ 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러다가 나도 없어질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거하려면, 내 능력이 더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니니? 내 능력을 더 드러내길 원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아, 그렇구나.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원하시는 구나.’”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교회 역사가 정치와 가까웠을 때를 빼고는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없다고 본다. 사무엘이 사역했을 때, 예레미야가 사역했을 때, 에스겔이 사역했을 때보다 우리 사역의 현장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의 선교의 걸음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새 발의 피라고 생각한다.”

“제가 젊은 목사였을 때, 제 마음에 항상 다른 시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교회 개척이 어려운 것은 맞지만 과연, 하나님의 사역은 꼭 어려워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더 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생만 시키는 분은 아니다.”

“저는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작게 본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건과 상황을 훨씬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복음이 진짜인 곳에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믿음이 있다. 그것 하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며 프로그램으로 해결해 보려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에게 복음과 성경이라는, 세상도 이기고, 죽음도 이기고, 어둠도 이기고, 사망도 이기는 무기가 있는데 이 무기는 옆에 두고 다른 무기로 해결해 보려 애를 쓰는 느낌이다. 저는 원초적인 근본적인 목회자이기 때문에 저는 그게 먼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복음과 성경, 이게 진짜 잖아요, 이게 이기잖아요’, 그런 현장을 역전시키는 교회, 목사님, 성도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가 개척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개척교회를 하면서,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피했으면 좋겠다 잘 지켰으면 좋겠다는 게 두 가지가 있다. 작은교회라고 해서 너무 쉽게 성도를 임직하지 말자. 그것은 자기 사역 깎아먹기 라고 본다. 큰 교회, 중형교회, 작은 교회나 임직은 교회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작은 교회를 해서 알지만, 성도들 안에, ‘작은 교회는 다 쉽다’라는 생각, ‘나는 이정도 했으니 임직 받아야 해’라는 생각이 너무 당연하다는듯 깔려 있다. 저는 그런 면에서는 고집스러운 불통의 목사일 수 있지만 최대한 원칙을 지켰다. 이번 저희는 20년이 되었지만 이번이 네 번째 임직이고, 권사 두 번째 임직이다.”

“또 하나는, 작고 열악하다 보니까 간절해 질 때가 많아서, 교회 잘 다니는 분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교회 잘 다니고 있으면 절대 터치하지 않아야 한다. 목사는 인격과 신뢰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기존의 잘 다니고 있는 성도에게 눈독 들이면 안 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양으로 목양을 한다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해진다.”

이건창 목사(발렌시아 샘물교회)
(Photo : 기독일보) 이건창 목사(발렌시아 샘물교회)는 오늘날 교회의 위기에 대해,

마지막으로, 20주년을 맞이하며, 교회를 새롭게 재정비하고, 교인들의 신앙교육을 더욱 체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감사예배, 임직 예배 준비를 하는데 10년 때도 안 했다. 20년이 되는데 비지니스 샾인샾이라고하는 비지니스 전략이 있다. 예를 들면 반스앤노블스 서점에 스타벅스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제가 기도하는데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었다. 개척 안에 또 개척의 마음으로 그렇게 출발하기 원한다. 그래서 저희 교단 목사님들 다 불러서 축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를 드리고 임직을 하기로 했다. 작년 11~12월부터 새출발을 향한 기대감으로 시작했는데 두 달 쯤 지나니 현타가 오더라.”

“잘 성장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때 반토막 났다. 기대감에 부풀었다가도 막상 현장을 딱 보면,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고 속상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지금까지 20년 동안 네가 발렌시아 샘물교회 사역을 해 오면서, 내가 함께 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느냐’, 그 말씀으로 치유를 받고 다시 힘을 얻었다. 다른 것은 이렇다 저렇다 평가 받을 수 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역의 현장이었기에, 새로운 다짐을 갖고 인도해주실 것을 믿는다. 저를 향한 새로운 챕터가 될 것이는 믿음이 있다. 저는 힘들고 고생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은혜가 더 큰 현장이었다는 것을 나누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20년의 개척의 자리에 함께 한 안보슬 사모의 소감도 놓칠 수 없었다. 힘든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궁금했다. 그는 이 길이 베스트였기에, 힘든 것이 당연했고, 오히려 힘들었을 때 쓴 다이어리 안에, 성령 충만한 내용이 가득했다고 했다.

안보슬 사모(발렌시아 샘물교회)
(Photo : 기독일보) 안보슬 사모(발렌시아 샘물교회)는 힘들었던 때 썼던 다이어리에 오히려 은혜의 기록이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남편이 처음 개척할 때, ‘저는 쉬운 길로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이 길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베스트 웨이가 정말 어렵더라. 어려울 때 마다 남편의 그 말이 생각 났다. 베스트의 길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들이 정말 어려운 훈련을 하고 국가 대표 선수가 되듯,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은 베스트이기 때문에 세상과 다른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괜찮다’는 마음으로 왔다.”

“힘들면 때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셨다. 성경을 보면 모세는 어려움을 만날 때 마다 그냥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더라. 저는 그게 너무 감사했다.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럴 때마다 무릎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강하게 만나 주시고 큰 위로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주셨다.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셨다. 정말 힘들었던 해에 썼던 다이어리를 나중에 다시 보는데 힘들었던 내용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기도, 말씀, 성령 풍만한 노트를 보게 되었다. 그 힘이 저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시작한 개척의 자리, 자녀의 신앙교육은 어떻게 했을까?

“아이에게, ‘엄마 아빠와 사역을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어렵지만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심어주었고, 아주 어릴 때 부터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너희가 너무 자랑스럽다. 사람도 공짜가 없는데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하시고 너희에게 때에 맞게 선물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간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안보슬 사모는, 그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어머니에게 배웠다고 설명했다.

“저는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6학년 초에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웃으면 애들이 웃고, 엄마가 기운이 없으면 다 기운없어하는 것을 보고, ‘애들 앞에서는 울지 않겠습니다. 애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다짐하셨다. 아파트 단지 안에 교회를 다녔는데 새벽 기도 외에도 매일 한 번은 찾아가셨다. ‘아빠 없이 자랐지만 너희들은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아니야. 너희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있지’라고 하셨다. 저도 그래서 그런지 사역이 어렵죠. 세상의 모든 일도 어렵죠. 저희 엄마가 저에게 그러셨다. ‘하나님 일 하면서 어려운 게 좋지 않겠니.’ 제가 교회의 어려운 소식을 아이들에게 영향을 흘려 보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