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독교의 최대 명절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며 지키는 날입니다. 사도바울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담대히 외쳤습니다. "사망아,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부활의 열매가 약속되어 있기에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잠자는 자들의 첫 부활의 열매가 되심으로 그를 믿는 자 역시 죽음 너머 부활의 열매를 맺을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죽음과 같은 현실이 우리를 덮고 있어도 앞으로 일어날 확실한 미래를 선포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형당할 십자가를 며칠 앞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당한 죽음이 아니라, 열매를 향한 계획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죽음이었습니다. 죽음과 부활, 두 모순된 개념이지만, 기독교인의 삶은 이 두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삽니다. 죽음과 같은 아픔을 견디고, 참아내면서 가정과 공동체를 살려내는 부활의 열매를 맺고 삽니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믿음의 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 주에 영국 한인 목회자들의 초청으로 같이 목회의 시름을 나누며 격려하기 위해 갑니다. 이번에 목회자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한 분이 제가 강사로 오는 것을 알고 이멜을 주셨습니다. 웨일즈 하노버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처음엔 하노버에 있는 한인교회 목사님으로 이해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던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한 바로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26살에 조선에와서 성경책을 건네주고 참수당한 토마스 선교사는 당시 하노버 교회 담임목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이 설교하는 그 강단에서 아들을 목사/선교사로 안수하여 파송했는데, 허무하게 죽은 것 같아 얼마나 망연자실 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성경책은 어느 여관집 벽에 도배되었고, 도배된 성경을 읽고 여관 주인이 예수 믿게 되고, 그 성경책을 가져다 준 12살 소년 최치량이 예수 믿게 되고, 훗날 마펫 선교사가 이 여관에 머물며, 이 사정을 알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여관을 사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 교회는 후에 평양 대부흥의 진원지 장대현교회가 되었습니다. 최치량은 나중에 장대현교회 초대 장로가 됩니다. 평양 대부흥의 열매로 한국교회가 일어났고, 세계에 2만 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토마스 선교사 파송한 후 158년을 돌아, 한인 목회자가 하노버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부활과 함께 한국의 바친 생명을 열매로 거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