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꼭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주도성이다. 주도적이지 않으면 리더가 아니다. 자신의 사명과 가치관에 따라 주도적으로 리드하지 않는다면 리더는 타인의 주관과 우선순위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수동적이라면 리더가 아니다. 리더가 주도적이 아닐 때의 가장 문제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는 주도적인가?" 아쉽게도 이 질문에 대한 나 자신의 대답은 옹색할 때가 있다.
조직의 구성원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직을 이끌고 가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주도성을 잃어버리고 그때 그때의 상황과 필요에 떠밀려 갈 때가 있다. 갑자기 발생한 상황이나 타인의 필요를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항상 리더가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주도적으로 나의 사명을 이루고 있는가?"라는 이 질문은 이렇게 풀어써도 타당하다. "나는 내가 주도하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
마가복음 1장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침례요한이 체포된 이후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어 제자들을 부르신 이야기와 안식일에 가버나움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회당에서 나온 후 예수님은 곧장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치셨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날 저물어 해질 때에 온갖 종류의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은 각종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며 귀신을 내쫓으셨다. 그리고는 귀신이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이런 엄청난 사역을 마친 이후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하셨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시몬을 위시한 일단의 무리가 예수를 찾아내어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주를 찾습니다. 저희들과 함께 돌아가시지요? 이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 있는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 순간 주님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막 1:38).
예수님의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아셨고 자신의 사역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셨다.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일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다. 나의 사명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예수님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붐을 타고 사역하지 않았다. 그분의 사역에는 양보할 수 없는 우선순위가 있었다. 다시 말해 그가 가는 방향은 너무나 분명했다.
<리더십의 본질>에서 조직원이 좋아하는 주도적 리더에 대한 아서 코터렐의 설명이 너무나 강렬하여 잊을 수 없다. "이 조직이 달성할 수 있다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을 말해 줄 테니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보라"라고 말하는 식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겠다."
섬기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주도하지 않는다면 잘 섬길 수도 없다. 섬기는 지도자를 탁월하게 하는 것은 주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