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十字架)>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이 시는 민족 시인 윤동주의 시입니다. 윤동주는 <서시>, <별을 헤는 밤>, <자화상> 등으로 유명한 시인입니다.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 동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1945년 2월 16일에 사망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중학생 시절부터 시를 썼고, 연희전문 재학 중인 1941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다 실패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상지대학에 재학하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계속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시를 너무나 사랑했던 천재적인 시인입니다.
윤동주의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76번지입니다. 그리고 명동촌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명동촌은 동간도의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1899년 함경도 출신의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동간도로 집단 이주한 후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이 합류했고, '동방을 밝히는 곳이라는 의미로 명동촌(明東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은 동간도 최대의 한인촌이었습니다. 윤동주는 민족의 한이 서린 곳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그는 명동학교(明東學校)에서 수학하였고, 광명중학교와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졸업했습니다. 시인은 일본에 건너가 1942년 동지사 대학교(同志社大學)에 입학했습니다. 1943년 귀국을 준비하던 그는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당했습니다. 그리고 27세의 젊은 나이 1945년 2월 16일에 감옥에서 요절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그는 100여 편의 시를 남겼고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윤동주의 <십자가>는 그의 대표적인 신앙시입니다. 윤동주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그는 특히 대부분 학교를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다녔습니다. 아주 제한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만, 고향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고, 농촌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던 독실하고 적극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이 시는 제1연과 2연이 전반부이고, 제3연, 4연, 그리고 5연이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십자가에 높이 들리지 않고는 햇빛(진리/희망)을 쫓아갈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십자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물음(2연)으로 이뤄졌습니다. 후반부는 그 물음에 대해 시인이 답변입니다.
제1연은 현실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걸려 있는 현실입니다. 쫓아오던 햇빛이 십자가에 걸려 있는데, 십자가가 희망인데, 십자가가 너무 높습니다. 시인은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암울한 현실을 이기는 길이 십자가를 지는 것인데, 십자가를 잘 자신이 없었습니다.
시인은 정치적 상황의 암울함을 아파하지만, 이 시는 오늘의 영적 빈곤을 앓고 있는 우리 모습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희망인 줄 알지만, 십자가를감당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 같습니다. 모두 십자가가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십자가를 거부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후반부 세 연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화자인 시인이 주어입니다. 후반부를 요약하면 십자가(순교)를 기다리다(3년), 그때가 오면(4연), 자신의 청춘을 제물로 바치겠다(5연) 고백입니다.
3연은 십자가(순교)를 기다리던 상황을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라고 설명합니다. 이 시에서 “ㄴ데”가 세 번 등장하는데, 모두 현실의 절망적 상황을 설명합니다. 1연에 “쫓아오던 햇빛인데” 2연에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그리고 3연에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등입니다. 이 절망의 절정이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입니다. 그 절망의 상황에 할 수 있는 것이 겨우 휘파람이아 불며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마냥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때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이 보입니다. 시인은 예수님을 괴로움과 행복 두 모습으로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졌던 “괴로웠던 사나이”였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인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합니다.
시인은 4연에서 서로 같음을 의미하는 조사“처럼”을 따로 떼어 하나의 행으로 사용합니다. 단 두 글자, “처럼”을 독립된 행으로 사용하는 것은 시인의 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뒤를 따르려는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자신의 의지나 결심이 아님을 또 밝힙니다. 시인은 다음 행에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허락된다면... 따르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5연에서 시인은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시인은 처연한 고백으로 순교를 향한 의지를 표명합니다. 시인은 암울한 조국을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는 다짐과 고백을 합니다. 그 암울한 현실을 “어두워 가는 하늘”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이 시를 읽습니다. 그간 거의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하늘은 어둡습니다. 점점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처럼 시인도, 우리도 피를 흘려야 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희생과 섬김이 싯구처럼 꽃처럼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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