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의 이영훈 목사 초청 CGI 성회, 북미총회 실행위원회와 목사 고시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북미총회에서만 80명이 넘게 모였는데 그 가운데서 눈에 띄도록 경건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호텔에서나 성회 장소에서나 어떤 모임과 이동에서도 항상 모범이 되었고, 무슨 일을 시키든지 군소리 없이 ‘아멘’으로 순종하며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분들은 바로 저희 교회에서 간 4명의 목사고시생 전도사님들이었습니다. 목사고시 시험이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으니 잠시도 딴 생각, 딴 짓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들처럼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한가한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바로 방에 올라가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했습니다. 약속 시간 전에 일찍 준비하고 미리 나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낮에 시작한 목사고시가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끝났는데도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마음에서 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놓치지 않았고 예의를 잘 지켰습니다. 목사고시라는 쇠사슬에 묶인 것이 오히려 참 믿음을 증거 하는 기회가 된 것이었습니다.
또 이번 비행기 여행에서는 비싸(?) 보이는 강아지를 데리고 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차이니 불독인지 프렌치 불독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인은 개에게 집중하여 계속 만져주고 안아주면서 정말 개를 주인처럼 모시고 여행하는 듯해보였습니다. 그렇게 부티가 나는 개들도 반드시 개 줄에 묶여 있었는데, 좋은 주인에게 묶여 있으니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되는 것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전능자가 아니기에 반드시 무언가에 매이고 묶이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에 매이고 묶이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냥 육신과 본성대로 살면, ‘두려움과 욕심’에 이끌리어 세상이 주는 쇠사슬에 매이고 묶이게 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에 매이거나 끝없는 욕심에 묶여 결국은 도둑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복된 결과를 가져오는 매임과 묶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에 매이고 묶이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자기 셋집에 머물며 자기를 지키는 군인에게 쇠사슬로 함께 묶여 지내야 했던 바울은 그 상황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행28:20) 자신이 세상의 로마법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려온 바로 그 소망, 메시아에 대한 복음을 증거 하는 사명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사명 때문에 쇠사슬에 매이는 ‘불편함이 있는 자유’ 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더욱 주님을 바라보고 묵상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편리함과 불편함이 삶의 기준이 되면 눈앞에 있는 작은 이익이나 고난 때문에 휘둘림을 당하게 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으면 사명에 매인바 되어서 하늘의 소망과 기쁨과 승리를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