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라는 용어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생소하다. 이 용어는 자신이 1927년에 세대주의로 분류한 휴거와 기타 신학적 개념의 가르침을 혐오했던 근본주의 그리스도인 필립 모로가 만든 것이다. 모로가 경멸하는 마음으로 이 용어를 만든 것은 세대주의가 생긴 이래 세대주의가 역동적으로 존재해 왔음을 드러낸다. 세대주의는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 사이의 긴장으로 말밍마아 지울 수 없는 형태로 형성된 신학이다. 이런 투쟁은 현대 복음주의에서 큰 역할을 해 왔다. 지난 200년 동안 세대주의적의 부침은 미국의 종교, 신학, 문화, 정치, 사회 변화의 매혹적인 태피스트리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아일랜드 성공회의 반대자들부터 21세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르기까지 범위와 시간에서 그 폭이 넒다.
대니얼 허멀 – 세대주의의 부상과 침몰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때문에 그가 본성과 행동에서 실제로 얼마나 죄가 많은지와 관계없이 신분상으로는 성결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정당한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바울이 참된 그리스도인을 언급할 때 사용하는 중요한 표현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그가 가능하게 하신 구원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를, 하나님께서 자기 스스로를 속여 신자의 마음이 죄로 가득하더라도 마치 성결한 것처럼 여겨 주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성자의 거룩함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성결하셨고, 만약 그리스도인이 성결하다면 그는 신성한 성품에 실제로 참여하는 자가 되었기에 거룩한 것이다. 성경에는 온전히 성화된 사람의 마음에 이루어지는 실제적 성결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제시하는 말씀이 적지 않다.
W. T. 퍼카이저 – 충돌하는 성결론
성경의 많은 여성이 예수님께 헌신했습니다. 성경의 세 번 나오는 베다니의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 발 앞에 있는 모습이었는데, 첫째,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들었고(누가복음 10:38-39), 둘 째,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을 찾았고(요한복음 11:32), 셋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엿새 전에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요한복음 12:3). 마리아가 주는 세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고, 둘째, 예수님께 슬픔과 고통을 고백하였고, 셋째, 자신의 가장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특히 세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 것입니다. 갸롯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마리아를 변호하시고 마리아를 축복하시고 아름다운 일을 하였다고 칭찬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일상생활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김연택, 조숙자 – 내 영혼아 깨어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