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 9일 밤 자국 내에 억류했던 탈북민 약 600명을 기습적으로 북송했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정의연대 등 북한 인권운동 단체들과 현지 소식통에 의해 전해졌는데 통일부가 13일 이를 공식 확인하면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북송된 탈북민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들어갔다가 공안에 붙잡혀 동북 3성의 감옥에 수감돼 있던 사람들로 이들 가운데는 국군 포로 가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자국 내에 억류한 탈북민을 북송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코로나 통제 해제 후 이번처럼 대규모 북송 사례는 처음이어서 남은 2천여 명에 대한 강제 북송 조치 또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사실 이번 중국의 탈북민 북송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코로나로 굳게 닫혔던 북·중 국경이 3년여 만에 다시 열리면서 중국내 수감시설에 억류된 탈북민이 가장 먼저 북송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항조우 아시안게임 등을 감안해 그 시기를 저울질해 오다 대회가 끝난 직후에 기습적인 북송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기간 체포돼 중국 전역에 수감된 탈북민은 약 2600명으로 이들이 북송되면 정치범수용소 등에 갇힌 채 모진 고문과 강제 노역에 처해질 게 뻔하다. 최근 북한이 탈북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터라 국가반역죄를 적용할 경우 총살형 등에 처해질 수도 있다.
탈북민은 국제법적으로 '난민'으로 분류된다. 북한 정권의 정치·경제적 핍박과 인권 유린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난민'을 고문·박해 우려가 있는 곳으로 강제 송환하는 건 유엔 난민 지위 국제 협약과 고문 방지 협약 위반이다. 중국이 이 두 조약에 가입한 국가로서 이를 번번이 어기고 반인륜적인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걸 더 이상 용인해선 안 된다는 게 국제사회의 목소리다.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중국 당국은 9일 밤 어둠을 틈타 탈북민들을 트럭에 태워 군사작전 하듯 끌고 갔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선 북한 보위부가 직접 중국으로 넘어가 탈북민 호송에 관여하고 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정황을 볼 때 북·중 양측이 탈북민 북송 시기를 아시안게임 종료 직후에 하기로 사전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D-Day를 북한 노동당 창립 78주년인 10일 전야로 잡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 반문명국가적인 행태를 자행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전체 아시아를 아우르는 스포츠 축제인 아시안게임을 성대하게 치르면서 다른 한쪽에선 비인도적인 강제 북송을 위해 은밀하고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치가 떨릴 지경이다. 항조우 아시안게임의 표어처럼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한다"는 중국의 원대한 꿈은 스스로 반인륜 국가라는 낙인이 찍힌 채 행위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런 나라가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란 사실은 뭐라 설명이 안 된다. 유엔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나라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반복적인 기만 행위에 아무런 제지도 하지 못하는 국제기구의 실추된 허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과 인권이사국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전 세계적인 목소리가 더욱 고조되고 있어 중국이 이런 성난 압박을 어디까지 버텨낼지 지켜볼 일이다.
정부의 외교 대응 역량도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얼마 전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중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탈북민을 의사에 반해 북송해선 안 된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민을 전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랬는데도 중국은 우리 정부의 요구를 무시하고 강제 북송을 단행했으니 한마디로 '패싱'을 당한 셈이다.
헌법에 북한 주민은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물며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한 우리 국민을 구출하는데 정부가 사력을 다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가 기울인 외교 노력의 결과가 중국의 집단적인 강제 북송이라면 외교적 무능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 들어 탈북민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건 앞서 통일부 장관이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민 모두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데서 확인된 바 있다. 지난 정부가 북한과 중국의 눈치나 보며 탈북민 문제를 애써 외면해온 것과 다른 원칙과 기조를 가진 건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가 아무리 이런 원칙을 가졌다고 해도 결과가 빈손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중국이 국제사회에 비난의 표적이 될 것을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취한 배경은 인권보다 북한과의 관계성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성이란 서로의 필요에 부응하는 사이란 뜻이다. 북한과 중국 간의 역사적이고 이념적인 유대관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게 외교력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탈북민이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의사에 반해 강제 북송되어서는 안 되고 한국으로 오길 희망하는 사람 모두를 안전하게 데려 오겠다"는 데 있다. 이 의지가 확고하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면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 중국의 강제 북송을 엄중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 하루라도 빨리 중국과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밖에는.
중국이 끝끝내 응하지 않는다면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 국제사회가 중국의 비인도적인 행태를 더는 묵과하지 않도록 여론을 통한 압박에 모든 외교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하나님을 폭압자 편이 아닌 늘 약자 편이시란 사실이다. 한국교회 1천만 성도들이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태로운 지경에서 구하시고 그 생명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