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토요일 이틀 간, 감사 기도원에서 감사방 목자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첫날은 목회, 목양, 즉 감사방 목원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 대해 나누었고, 둘째날은 성경적인 리더십의 핵심 가치와 원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때마다 맛난 특별 음식들을 나누었는데, 금요일 저녁은 타코 파티, 토요일 점심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감사방 목자 수양회를 하면서, 올해 유독, 감사방 목자님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님들께, 잘해드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는 설교 말씀을 전하는 만큼이나, 목양, 즉 양(영혼)을 돌보고 섬기는 일이 중요한데, 감사방 목자님들께서 저를 대신하여, 성도님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케어, 돌봄은 일반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잘 돌보는 것이고, 사업을 운영하는 것도 직원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돌봄은 꼭 필요하고, 특별히 돌보는 일에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은 중요합니다. 부모, 선생님, 멘토, 즉 누군가가 우리를 돌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케어, 돌봄은 기독교의 가장 귀한 가치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귀한 덕목이자, 섬김입니다. 다시 말해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곧, 잘 돌보는 것을 의미하고, 사역을 하는 것도 잘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섬기든, 결국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 사이에 돌봄이 항상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일에 있어서 목회적 돌봄이 없으면, 훈련과 양육은 불가능합니다. 케어, 돌봄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와 사랑, 섭리와 경륜으로 돌보셨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자라온 것입니다.
케어, 돌봄이 이렇게 중요하기에 우리는 돌봄에 대해서 늘 깊이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잘 돌보는 사람인가? 우리는 자녀를 잘 돌보고 있는가? 우리는 남편와 아내를 잘 돌보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사회에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케어하고 있는가? 우리는 교회 안에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케어하고 있는가? 어떻게 케어하고 있는가? 혹시, 나는 케어 받는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사실, 케어, 돌봄이라는 단어로 우리는 인격과 신앙의 성숙도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케어, 즉 돌봄 이야말로 믿는 자의 정체성이며, 사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성경은 말세에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은 곧, 케어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늘고, 케어를 하는 사람은 줄어든다는 뜻이고, 결국 세상은 겉으로는 교양 있고, 윤리적인 면에서 발전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삭막한 세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변해간다 하여도, 믿는 자는 케어, 돌봄을 해야만 합니다. 케어, 돌봄이 곧 신앙과 삶이 되어야 합니다.
케어, 돌봄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방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영혼이 있는 한 사람을 사랑으로 품고,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을 돌보았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들을 돌보셨습니다. 요게벳은 아기 모세를 끝까지 돌보았습니다. 단지, 케어의 기본이 사랑이기에, 사랑이 부족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은혜와 사랑의 능력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마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나눠줄 사랑의 모습과 태도가 많듯이, 하나님의 영적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의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돌봄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돌볼 열심, 열정, 수고, 헌신, 희생할 여유를 갖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케어, 돌봄을 잘 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큰 상급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