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라는 말은 현대인에게 아주 친숙한 말입니다. 요즘 인문학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인문학이 대세입니다.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그야말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로마의 정치가요 사상가요 인문학자인 키케로(Cicero)입니다. 키케로가 인문학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라틴어는 Humanitas(후마니타스) 입니다.
키케로는 그의 저서 '웅변가에 관하여(De Oratore)'에서 인문학이라는 말을 웅변가를 육성하는 교육과정으로 설명했습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을 다양한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리엑스(R. Riecks)는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를 연구하여 그 다양한 의미를 정리하였습니다. 리엑스가 정리한 후마니타스의 개념은 인간 본성, 온건함, 위엄, 명예, 정의, 덕, 유머, 세련, 지혜, 절제, 겸손, 형평, 측은지심, 선의, 통금, 베풀기 좋아함 등등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망라했습니다.
키케로는 이런 후마니타스를 로마의 웅변가 양성 교육과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당시의 웅변가는 정치가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키케로의 후마니타스는 로마 지도자 양성과정이었습니다. 키케로는 로마의 지도자 양성을 위해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길러 주는 교육, 즉 인간미 넘치는 인간을 길러주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후마니타스(Humanitas)를 사용했습니다.
키케로는 '웅변가에 관하여'에서 헬라의 웅변가 양성과정을 비판했습니다. 키케로에 의하면 헬라의 웅변가 양성과정은 실용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미가 없는 웅변기술자들을 양성했다는 것입니다. 키케로는 이런 헬라 수사학과 웅변술의 약점을 보완하는 교육과정으로 후마니타스를 제안했습니다. 키케로는 조국 로마의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인간다운 지도자 양성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후마니타스를 주창했습니다.
여기서 키케로가 헬라의 웅변가의 교육을 비판한 것은 아주 획기적인 일입니다. 로마는 헬라를 정복하고 세계로 영토를 확장해 가면 갈수록 더욱 헬라 문화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서울대 허승일 교수는 로마가 확장되면서 헬라 정신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로마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자녀들 교육을 위해 헬라의 노예 출신 교사들을 활용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로마의 귀족들이 헬라 교육과 문화에 열광했음을 설명합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헬라의 교육을 숭상하여 헬라 노예 출신의 문법 교사들에게 자녀 교육을 맡겼지만 헬라 노예 출신 선생들의 교육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노예 출신 문법 교사들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또 한편에서는 자신들 학교 특성화를 위해 개별적 교육 체계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육의 중구난방(衆口難防)을 초래했습니다. 또 건강한 철학이 없는 교육이 로마 사회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이 사설학원의 난립으로 교육체계가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교육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한 로마 사회는 몇 가지 자구책을 강구 했습니다. 첫째 수사학교 폐교 결정이었습니다. 기원전 92년 로마의 콘술이었던 크랏수스(Crassus)는 수사학교의 폐교를 명령했습니다. 그때 크랏수스는 당시 수사학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수사학 교육이 인간이 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혀의 훈련만으로 뻔뻔한 사람을 만드는 짓"이라고 공포했습니다. 둘째, 키케로와 같은 로마의 지성인들은 새로운 로마식 교육체계 계발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키케로의 후마니타스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키케로는 헬라 웅변가 약점을 보완한 로마의 웅변가 양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체계로 후마니타스(Humanitas)를 제안했습니다. 키케로는 헬라의 웅변교육이 혀의 훈련에만 집중해서 뻔뻔하게 말만 잘하는 말꾼 양성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로마의 웅변교육은 지성과 인간미를 갖추어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지도자 양성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후마니타스(Humanitas/인문학)의 등장은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키케로가 헬라 수사학(웅변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수사학 교육과정을 후마니타스(Humanitas)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후마니타스는 헬라어에서 교육이라는 의미가 있는 파이데이아(Paideia)의 라틴어 의역이라고 합니다. 파이데이아는 교육이라는 의미로 소피스트나 웅변가를 양성 교육과정이었습니다. 헬라 사회에서 파이데이아는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 기하학, 음악, 산수와 천문학 등의 과목들을 망라한 교육과정이었습니다.
로마 시대 수사학을 연구한 안재원 박사는 헬라의 파이데이아를 자유 교양 학문으로 헬라 시민이 알아야 할 교양과 지식의 전수로 보았고 로마의 후마니타스는 지도자를 기르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헬라 교육(파이데이아)의 목표가 일반 시민의 양성이었다면 로마 교육(후마니타스)의 목표는 철학(정신)을 가진 지도자 양성이었습니다. 헬라 교육은 지식과 교양에 역점을 두었고 로마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의 양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정리하면 로마의 키케로가 주창한 인문학(후마니타스/Humanitas)은 기본적으로 지성과 인간미를 갖춘 '지도자' 양성과정이었습니다. 인간미를 갖춘 사람다운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로마의 인문학이었습니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교양과 인격을 갖춘 삶을 위해 인문학(Humanitsa)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은 현대 대학 용어로 표현하면 교양필수 과목입니다. 근대 대학교육은 인문학을 교양 필수로 정했습니다. 교양 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전공이 무엇이건 간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인문학은 교양필수 즉 교양있는 삶을 위한 필수 과목입니다. 인문학 후마니타스(Humanitas)는 인간미와 교양을 갖춘 삶의 필수 과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