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기독일보) 기드온동족선교회 박상원 목사
(Photo : 기독일보) 기드온동족선교회 박상원 목사

아니, 이것은 이전의 두만강의 모습이 아니었다. 먼저 강폭이 눈에 확 띄게 줄어 보였고, 그전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완전히 관광객과 장사를 위한 위락시설로 변질되었다. 또한 그 지겨운 선전문구들로 치장이 되어서 고상한 품격은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천박하기 그지없는 영화포스터들이 벽에 덕지덕지 붙어놓은 70년대 서울의 담벼락을 보는 것 같았다. 

강 이편에는 은 "한마음 한뜻으로 중국 꿈을 이룩하고 손에 손잡고 문명사회 이룩하자" - 중국몽과 강 건너 또 강 저편에는 " 000 동지와 000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오래된 문구와 새로이 등장한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 등의 문구들로 미관을 물론 마음의 눈살을 더 찌푸리게 했다. 이 두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 심령에다 영원히 새길 문구를 의도적으로 지워 버렸고(교회 폐쇄와 성도 구금 등으로 기독교 탄압), 실패한 사상으로 인민(사람)들을 아직도 세뇌하면 그리될 줄로 여기고 있으니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 6:4~7) 구약의 이 말씀을 주님 예수께서는 신약에서 정말 우리가 새겨야 할 문구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거듭거듭 당부하시고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왜, 이 위대한 진리를 거부하고 인간우상과 이념숭배를 강요할까? 이내 곧 무너질 것들인데...  

이런 생각에 두 눈을 다시 뜨고 강 양쪽을 깊이 살폈다. 그전에 없었던 5층짜리 연립주택 같은 큰 빌딩이 10채 정도가 크게 보였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하나같이 유리창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조선동포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2017년 큰 홍수로 많은 건물들과 초소들이 쓸려 내려갔고 3년간 열심히 새로 건물(집)들을 지었는데 완공 직전, 팬데믹이 터져서 국경폐쇄로 그만 유리창에 관련된 자재들의 공급이 불가해서 창문이 없는 채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창문이 없는 강건너 건물을 뒷배경으로 한 포토존
(Photo : 기드온 동족선교회) 창문이 없는 강건너 건물을 뒷배경으로 한 포토존

가슴이 매우 아팠다. 이곳이 추운 겨울에는 영하 20~30도나 되는데, 그렇다면 그 추운 겨울을 네 차례나 지냈단 말인가! 그런데 필자를 더 열을 받게 하는 광경이 그 옆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창문이 없는 건물을 뒷배경으로 신랑 신부 모형의 포토존(사람얼굴만 없게 하고 손님들이 얼굴을 집어놓고 찍는)에서 히죽히죽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중국 한족들이 보였다. 가슴이 더 쓰리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정신이 있는 걸까! 어찌 이웃나라 백성들의 고통의 현장을 뒤로하며 사진을 찍어 댈 수 있는가 말이다. 이 사실을 알만한 강 건너 동족들이 마치 "언제까지 우리를 이렇게 조롱받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요?"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듯 그들의 모습들은 너무 맥이 없고 힘이 없어 보였다. 

하기야 이전에 고난의 대행군 시절에는 압록강의 중국유람선의 옵션투어 중에는 '인간사파리'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즉 배가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육지 가까운 곳에 배가 고파 먹거리를 얻으러 나온 북녘동족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 그것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며 낄낄 거리며 장난을 쳤다고 하니 어찌 문명사회를 함께 가자고 하는 고매한 뜻보다는 군림하고 지배하겠다는 음흉한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수이전의 2013년의 두만강 건너편의 북한 남양시 모습
(Photo : 기드온 동족선교회) 홍수이전의 2013년의 두만강 건너편의 북한 남양시 모습

도저히 더 이상은 볼 마음도 생기지 않아 어서 일행들이 적당히 사진 찍고 오기만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데 일행들이 무장한 공안에게 전부다 여권을 보이고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영문을 몰랐다. 무사히 오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 한 20여분이 지나서 무사히 다들 내가 서 있는 길 건너편으로 걸어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시기가 바쁘게 주차장 미니버스에 탑승을 하자, 그 공안이 계속 좇아와서 인원수가 맞지 않다며 다시 일행 모두의 여권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다시 마음을 졸이며 내 품의 여권을 건넸다. 

<다음 호에 계속>

기드온동족선교 대표 박상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