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인문학적 견지에서 말하면 기독교는 인문학 운동입니다. 인문학에 성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성경에 인문학이 담겨 있습니다. 기독교는 자연의 종교가 아니라 경전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수행의 종교(불교나 힌두교)가 아니라 경전의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등)입니다. 원래 기독교는 책을 통해 전도하고 책을 좋아하는(Bookish) 인문학 운동입니다. 

초대 교회사를 살피면 종합 인문학이었던 수사학의 대가들이 기독교 교리를 정립했습니다. 대부분의 교부(Father of Church) 신학자들은 수사학자들이었습니다. 2세기경 반교회적이고 적대적인 이방인들과 이단들에 대해 교회의 방어 및 옹호, 그리고 호교적(護敎的)인 변론을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이단과 싸우면서 기독교 교리를 세웠습니다.    

교부들은 기독교 교리를 세우면서 당시 철학과 수사학의 논리를 활용했습니다. 오리겐, 터툴리안 암브로시우스, 성 어거스틴, 요한 크리소스톰, 제롬, 그레고리오 대교황, 아타나시우스 그리고 락탄티우스 등등의 교부 신학자들이 기독교 인문학자들입니다. 다음에 밝히겠습니다만 그 당시 수사학은 인문학입니다. 사실 로마 인문학은 업그레이드(Upgrade)된 헬라의 수사학입니다.    

이런 교부 신학자들 이전에 있었던 속사도 교부들(Apostolic Fathers)도 상당한 수준의 인문학 소양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귀한 저작물을 남겼습니다. 안디옥교회 감독 이그나티우스나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갑 등등의 교부들은 사형수가 되어서 사형 집행을 위해(순교를 당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교회들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죽음을 직면하고도 흔들림 없이 신앙적 교훈을 전한 것도 위대한 일이지만 그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편지를 써서 전한 것도 주목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한 이후 예수님 행적을 기록하여 복음서를 남긴 사도들부터 시작된 기독교 인문학 운동은 그들의 제자들인 속사도 교부들도 기록을 남겨 기독교적인 인문학 운동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다수의 기독교 부흥 운동들이 있는데 많은 경우에 인문학적인 운동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 개혁입니다. 종교 개혁은 평신도가 성경을 직접 읽고 깨달아 가는 인문학 운동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원인이 되었던 르네상스는 독서를 통해서 본질로 돌아가자는 인문학 운동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종교 개혁은 기독교적인 르네상스입니다.    

16세기 청교도 운동은 책을 읽고 책을 팔고 책을 쓰는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영국 스틸링 대학교 키블(N. H. Keeble)교수는 '청교도 운동은 본능적으로 책을 읽는 운동이다(Puritanism was an intrinsically bookish movement)!'라고 했습니다. 청교도 운동은 매서인 혹은 권서인(Book Peddler)들이 책을 팔았습니다. 청교도 운동은 책을 통해 부흥을 누린 기독교 인문학 운동이었습니다.    

한국의 선교에도 책 읽기 운동이 등장했었습니다. 청교도 운동의 전통을 가졌던 영국 선교사들과 당시 한국 교회는 서경조, 유석현, 안교철 등 유능한 보부상들을 권서인(Book Peddler)으로 임명해 성경을 보급하게 했습니다. 안양대학교 이은선 교수는 한국 교회의 건강한 성장에는 권서인들을 통해 보급된 성경을 읽으며 믿음을 가진 민초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 교회 초창기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권서인들의 역할은 한 권의 책보다 한 줌의 쌀이 더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성경을 팔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성경을 팔았습니다. 돌에 맞기도 하고, 일본 순사에게 독살당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복음을 전하며 성경책을 팔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성경책 보급을 통해 건강한 기초를 쌓았습니다.    

여하간 기독교는 인문학 운동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가 기독교 인문학을 현대 인문학 열풍에서 배우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어떤 종교보다, 어떤 분야보다 기독교와 성경이 인문학과 가깝습니다. 기독교 교회사가 인문학 운동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의 변곡점마다 기독교 인문학의 역할이 돋보입니다.    

다행스럽게 기독교가 인문학에 관심을 보이고 다수의 기독교 인문학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습니다. 대부분 기독교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고, 폭넓은 독서를 자랑하는 작가들의 값진 지식과 정보가 귀합니다. 그러나 단편적인 인문학적 지식의 나열이나 인문학적 단상들을 정리한 것이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거시적으로 기독교 인문학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인문학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인문학(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성경이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문학 양식대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단편적이 아닌 시편은 시로, 역사서는 역사책으로 봐야 합니다.     

둘째, 반대로 성경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쌓게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은 할머니들이 삶의 통찰력과 혜안을 가진 지혜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 한글을 깨우치고 성경을 통해 풍성한 지혜를 얻었습니다.      

셋째, 신학의 충실한 이해를 위해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신학은 인문학자들에 의해 기초가 세워졌습니다. 교회사에 교회를 지키고 교리를 세운 교부들이 인문학이었던 수사학(Rhetoric)을 활용해 교리를 세웠습니다.    

넷째, 인문학적 안목으로 삶의 지평을 넓혀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 외에는 용납할 수 없는 독선입니다. 불교나 이슬람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을 지키면서 그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문학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섯째, 인문학적 이해가 있어야 선교가 가능합니다. 선교 대상이 인문학적 환경에 있습니다. 선교 대상들과 인문학을 통로로 소통해야 합니다. 인문학은 선교를 위한 유용한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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