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칭의:Justification)으로 들어간 신자는 좁은 길(성화;Sanctification)을 걸어 천국에 이른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 13-15)
한국과 미국의 많은 목사들이 아직도 구원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주로 아래 구절들을 근거로 가르치고 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 8-9)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 16)
한편 궁극적 구원인 영생은 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심판을 받음으로 확정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성경은 다음과 같이 심판은 은혜나 믿음이 아닌 행위를 기준으로 받게 됨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 2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 11-12)
여기서 우리는 개혁 신학이 말하는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천국 입성이라는 궁극적 구원 간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이 둘을 연결하는 데는 일종의 교량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음의 말씀들은 그 교량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 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 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 21-2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5: 6)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 8)
위의 말씀들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구원의 시작인 칭의 구원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그 때까지 지은 원죄와 자범죄를 용서함 받아 의롭다 여김을 받고 영적 생명으로 거듭나는 구원을 의미함을 가르쳐 준다.
거듭난 신자는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성화를 이루어 감으로써 영화의 몸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은 구원론의 근거가 되는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의 고백과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간절한 권면을 묵상하면 우리는 칭의-성화-영화의 구원론이 성령의 통전적 구원론임을 더욱 분명하게 획인 할 수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 27)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 12-13)
대부분의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웨스터민스터 신조는 바로 칼빈 신학을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칼빈 신학이 그 내용의 대부분을 같이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론의 핵심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구원론과 판이하게 인간의 책임과 행위를 영생의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선한 행위는, 진실되고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증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한 행위로 신자들은 그들의 감사를 표시하고, 그들의 확신을 강화하며, 그들의 형제들을 교화하며, 복음의 선언을 빛나게 하며, 반대자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작품으로 예수 안에서 창조된 그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2)
웨민 신조는 한국의 장로교회를 포함하여 전세계 복음주의 교회가 헌법에 자신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교회(합동)의 헌법 신조 제9항은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영적, 도덕적 신뢰의 상실은 지난 50년 동안 교회의 양적 성장에 몰두한 목회자들이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은혜 일변도의 구원교리에 뿌리를 둔 설교를 해왔음에 기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한번구원 영원구원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한국교회와 미국 한인교회의 목사, 신학교수들이 옥한흠 목사처럼 회개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균형되게 그리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설교하고 가르칠 때 한국교회 그리고 한인교회의 갱신과 부흥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