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워싱턴DC 미의회에서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이후 10년 만에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미래 양국 동맹의 청사진을 제시한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가치 동맹”임을 강조했다.
미국에 대해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이자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고 운을 뗀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세기 동안 미국은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이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고 이로 인해 미국이 치른 희생은 적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고 전후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구축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세계 곳곳에서 평화와 번영을 일구었다”고 말했다.
6.25전쟁에 대해서도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사라질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 미국은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미군이 치른 희생은 매우 컸다. 장진호 전투에서만 미군 4500명이 전사했고, 6.25 전쟁에서 미군 약 3만7000명이 전사했다”고 미국의 희생과 도움을 언급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우리와 함께 자유를 지켜낸 미국의 위대한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면서 “오늘 이 자리를 빌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자식과 남편, 그리고 형제를 태평양 너머 한번도 가본적 없는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보내준 미국의 어머니들, 그리고 한국전쟁을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여기고 참전 용사들을 명예롭게 예우하는 미국 정부와 국민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한미동맹과 관련, “오늘날 우리의 동맹은 어느 때 보다 강력하며, 함께 번영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두 나라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서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번영을 일구어 온 중심축이었다. 현대 세계사에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유일한 사례인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성공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선교사들의 노력에 의해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된 자유와 연대의 가치가 처음 소개됐다고 했다. 또 이런 가치가 한국의 독립과 건국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하면서 호러스 언더우드(Forace Underwood), 헨리 아펜젤러(Fany Appenzeler), 메리 스크랜튼(Mary Scranton), 로제타 홀(Rosetta Hall) 등 한국을 위해 힘쓴 미국 선교사들의 이름들을 언급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는 “1960년대 초반에 박정희 대통령은 현명하게도 케네디 행정부가 권고한 로스토우(Walt Rostow) 교수의 경제성장 모델을 받아들여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신흥 산업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면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인당 소득 67불의 전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활력 넘치는 나라로 세계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미 양국이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힘을 모아왔다고 강조한 윤 대통령은 “지난 70년간 동맹의 역사에서 한미 양국은 군사 안보 협력뿐 아니라 경제 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면서 “초기의 일방적인 지원에서 상호 호혜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해 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미국에 진출한 글로벌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호혜적 한미 경제 협력이 곳곳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의원 여러분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해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임을 전제하면서 “이러한 의사결정은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한다. 세계 도처에서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가 진실과 여론을 왜곡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또 윤 대통령은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로 대표되는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법의 지배마저 흔들고 있다”면서 “이들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와 땀으로 지켜온 소중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시스템이 거짓 위장 세력에 의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자유는 평화를 만들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준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는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고, 번영과 풍요를 만들어낸다”면서 “70여 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맺어진 한미동맹은 이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신장된 경제적 역량에 걸맞은 책임과 기여를 다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취임식 연설을 인용해 “이제 인류의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면서 “저는 지난해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만들고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나라, 자랑스러운 조국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소명을 밝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북한에 대해서도 “불법적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은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면서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확실하게 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미의 단합된 의지가 중요하다”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재차 언급했다. 또 “날로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공조와 더불어 한미일 3자 안보 협력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북한인권과 관련, “북한 정권이 핵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사이 북한 주민들은 최악의 경제난과 심각한 인권 유린 상황에 던져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 주민의 비참한 인권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대한민국 정부가 최초로 공개 발간한 북한 인권보고서를 언급하면서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총살당한 사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고 유포했다고 공개 처형한 사례, 성경을 소지하고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개 총살을 당한 사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는 이러한 북한 인권의 참상을 널리 알려야 한다. 여기에 계신 의원 여러분들도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힘써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경제협력의 방향에 대해 윤 대통령은 “양국은 외교 안보를 넘어 인공지능, 퀀텀, 바이오, 오픈랜 등 첨단 분야의 혁신을 함께 이끌어 나갈 것”이라면서 “아울러, 양국의 최첨단 반도체 협력 강화는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과 경제적 불학실성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양국은 동맹의 성공적 협력의 역사를 새로운 신세계인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 동맹”이라면서 “우리의 동맹은 미래를 향해 계속 전진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갈 세계는 미래 세대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안겨줄 것이고 여러분께서도 새로운 여정에 함께해주시길 당부한다”고 연설을 마쳤다.
윤 대통령의 연설은 약 44분간 이어졌으며 상하원 의원으로부터 총 56번의 박수를 받았고 그 중 26번이 기립박수였다. 연설에서 ‘자유’는 46회 언급됐고, ‘동맹’, ‘민주주의’, ‘인권’이 각각 19회, 14회, 11회 나왔다.
한국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은 이번이 7번째로 이승만(1954년)·노태우(1991년)·김영삼(1995년)·김대중(1998년)·이명박(2011년)·박근혜(2013년) 전 대통령 등이 미 의회 연단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