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교수
(Photo : ) 안지영교수 <시대담론>

포스트 모던 시대 이후 기독교는 담론(discourse)을 상실하고 있다. 기독교가 형성해야 할 시대 담론은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되찾을 수 있는 역사적 동기를 부여하고 현 시대에 요청하는 교회적 책임적 연대감을 확립하는 것이다. 교회가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정신과 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창조력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기독교 교회가 존속해 온 방법이 끊임없이 시대정신에 걸맞은 신학적 응답을 해 왔기 때문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에 기독일보는 정기적으로 안지영 교수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와 함께 시대담론을 제기하고 현대 교회와 목회자가 현장에서 고민하는 주제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려고 한다.

현대 기독교가 외면하고 있거나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현대 기독교는 사람에 대한 '몰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인격적 가치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놓치고 있는 부분도 크지만, 그리스도가 공포한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 하나임을 전제한다면 사람을 놓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야 진정한 제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13:35).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을 이해한다면 오늘 교회는 사람을 위한 시스템이나 직제가 아니라 숫제 사람을 몰인격화해서 그 틀 안에 넣으려고 하는 노력이 차고 넘친다는 의미입니다.

이원론적 사고가 교회의 담장을 높이는 ,

그리스도의 새 계명, 하나님과 이웃 사랑은 따로 떼어 놓을수 있는 부분이 아님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보내 주신 사람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도 잘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또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을 (목회자들이) 요구하고 있지 않은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교회의 관심은 교회 그 자체로 인한 체증과 마비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사랑을 이분법적 사고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실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막12:31), '하나님과 이웃사랑'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COVID-19의 한창일 때 그리고 팬데믹을 지나 오면서 성도들이 눈치챈 사실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는다는 사실, 십일조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벼락을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 교회 봉사하지 않아도 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해는 마세요, 이 사실들을 눈치챘다는 것이 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이 성도들에게 성경에 전혀 없는 이야기를 끌어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교회에서 가르친 많은 교리와 교훈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성도들을 성경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촉 (sense)' 을 세우는데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성경적 교리에 대해서 상당 부분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굳이 (성도들을) 모이라고 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를 확립시키려는 거룩한 의도성이 아니라 다른 모순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시스템 유지를 위한 체제 유지가 우선이 아니었나 하는 성찰이 필요한 시대임을 직감해야 합니다.

MZ 세대는 교회에 피로감을 느낀다.

지금의 교회는 지역과 감정의 문제가 아닌 세대와 문화의 다양한 세대가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참 얄궂은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로나 세대에 대부분 참석하신 분들은 소위, '어르신' 세대이며, '기성세대'였으며, 젊은 세대들은 외면하거나 소수에 그쳤다는 것이 여러 통계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예배와 모임을 티비 시청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성 목회자들이나 사역자들은 이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예배가 정말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인가,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는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만의 종교적인 습관으로 작동될만한 요소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 (metaverse), 온라인 교회 (online church), 성경적 선이해가 우선 되어야 

안지영교수 <시대담론>
안지영교수 <시대담론>

바울이 각 교회를 향한 그의 서신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는 대목은 언젠가는 그 지역과 교회에 직접 방문하고 교제하고 싶다는 의지를 노정(路程)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직접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가서 만나 보길 원한다. 직접 교제를 원한다. 그러나 못가기 때문에 서신을 쓰는 것이다."라는 심정을 우리가 읽어 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한창 인기가 있는 걸그룹 블랙핑크나 유엔에서 연설까지 한 BTS 그룹이 우리 지역에 온다고 해도 화상으로 또는 온라인으로 보겠는가 말이다.

한국의 중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시대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마치 하이 테크놀리지(high technology)의 추세를 맞춰야만 세련된 목회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가 필요한 기술은 받아 들이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기술의 우월성이 영적인 탁월성을 이기지 못합니다. 팬데믹을 거쳐 오면서 적잖은 목회자들이 온라인 예배, 비대면 예배를 과도하게 관용을 베푼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온라인 예배가 필요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로 복귀하지 않는 소위 티비 화면 예배자들에 대해서 "잘 하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목회자가 있을까요? 그리 복잡할 것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는 (온라인) 메타버스 공동체가 아니라 직접 대면하는 수고로움을 의도적으로 발현하는 공동체입니다. 한국에서도 유명 목사님이 온라인 교회를 개척했다고 대대적으로 자랑하던데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시도입니다. 사이버 차원에서 지역 교회를 대체하는 것은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본질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어디까지 이러한 온라인 시스템은 보조적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인격적으로 만나는 직접 대면의 역동성(dynamic)은 의도적 성도의 사명적 책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도 주야로 함께 하는 믿음의 공동체였음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온라인의 탁월성은 인정하지만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새삼 교회사의 순교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더 험한 시대를 겪어 왔고 이겨낸 역사의 현장이 교회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여러 한계와 문제점이 교회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정리, 편집국 이창한 목사, 사진 제공, 달라스 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