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불교 집안서… 바뀌지 않던 여인이 바뀌어
극적이진 않아도, 인생 송두리째 바꾸신 하나님
대중에 밝힐 수 없던 아버지의 폭력과 영적 전쟁
사랑하는 이 따라 삶의 종지부 찍으려던 그 순간
하나님께 무릎 꿇고 “살려 주세요” 절박한 고백
정선희 집사(서울 광석교회)가 오륜교회에서 진행 중인 다니엘기도회에서 오랜 불교 집안인 자신의 가정에서 어머니부터 자신, 아버지까지 기독교인이 된 일화를 밝혔다. 또 어두웠던 가정사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12일 간증자로 나선 정선희 집사는 먼저 “방송을 하려면 좀 에너제틱하고 뭔가 열정적이고 장악력이 있어야 되는데, 저는 엄청나게 소심하다. 겁도 많고 이런 자리는 도망가는 딸이다. 저는 혼자 위로 받길 원하고 치유하는 데 바쁜, 아직 갈 길이 먼 그런 성도”라며 “근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이 자리에 서 있다. 하나님의 그 계획하심을 저는 늘 모르겠다. 모르겠으면 따르는 수밖에 없다. 오늘 집회가 소심한 딸에게 하나님께서 하나의 영역을 키우셔서 확장시켜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저는 사실 제 이야기를 하기 싫다. 창피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도 모르겠고, 제 생각은 늘 그렇다”며 “그런데 끝나고 나면 눈물을 네 줄기로 흘리면서 감사 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획과 계획을 믿고 이 자리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했다”며 간증을 시작했다.
정 집사는 “저희 집은 오래된 불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17년간 불자였던 어머니가 갑자기 바뀌어서 교회를 나간다는 것 자체가 사실 와 닿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업이 잘 안 되니까 어머니가 그냥 종교를 한번 바꿔 보는구나’ 그 정도로 생각했다. 바로 새벽기도 가시고 방언 은사 받으시고, 작은 개척교회였는데 어머니가 천군만마처럼 일하셨다”고 했다.
이어 “연예계 생활이라는 게 인간이 가장 초라해질 수 있는 곳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선택을 당한다. ‘너는 오늘 쓰이고 너는 쓰이지 않아’ 자존감이 잘 형성되지 않은 시기부터 이 세계에 투입되면, 쓰임 여부에 따라 존재의 가치가 결정이 돼 버린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 기회조차 없이,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내가 나라고 착각하면서 살게 된다”며 “저 역시 그랬다. 제대로 쓰여서, 나를 무시하고 차별한 모든 사람에게 복수하려 했다. 여러 가지 한맺힌 계획이 많았다. 그 무렵에 저희 어머니가 하나님을 만나셨고, 하나님과 함께 고공비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정 집사는 “어머니는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하다. 굉장히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아버지가 기복이 많아 신경질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교회에 가고 즐거운 얼굴이 됐다. 늘 감사가 흘러넘치고 찬양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또 “너무 놀라운 건, 어머니가 교회 가고 나서 아버지 사업이 망했는데, 어머니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었다. 사업이 안돼서 사업을 일으키려고 교회를 가본 건데, 그렇게 되니 아버지가 시험에 드셨다. 부부관계가 굉장히 안 좋았고, 아버지는 같이 가던 교회를 안 나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제가 투입됐다”고 했다.
정 집사는 “그때 방송생활하면서 굉장히 허무함과 고독함을 많이 느꼈다. 나의 일상을 지키지도 못한 채 가서 술 마시고 그들 앞에 내 모든 것을 마치 프리젠테이션 하듯이 ‘내 재능을 보고 방송에 제발 픽업해 주세요’. 이런 모든 생활에 좀 지쳐가고 있던 차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은 주일예배부터 출발하는데, 새벽기도로 먼저 출발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작심한 그 교회가 저랑 관계가 있던 교회였던 걸 알았다. 아버지와 불화가 심할 때 교회 불빛을 보고 엉금엉금 3~4번 정도 기어가 펑펑 울다가 검은 눈물을 흘리면서 잠이 들었던 곳이 그 교회였다. 하나님은 정말 치밀하신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정 집사는 “하나님 만나면 따질 생각밖에 없었다. 너무 지쳐 있었고, 세상에 너무 불공평했고, 가난이 너무 피곤했고, 외로웠고, 내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뭔가 좀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며 “어머니가 새벽기도 가자고 해서 갔는데, 방언기도가 문화적 쇼크였다. 사람 입에서 개구리 소리가 나는데, 어떤 분은 비행기를 타고, 일상에서 보던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으니까 겁이 나서 뛰쳐나간 적도 몇 번 있었다. ‘이 교회 조사해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약간 수사 마인드로 접했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나고, ‘내가 진짜 이렇게까지 왔는데 왜 안 만나 줘’ 이랬는데, 어머니를 믿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바뀌실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어머니는 이런 거 너무 싫어하고 의심 많은 유별난 분이었는데 ‘할렐루야’ 하면서 노방전도하니, 저 여인이 저렇게 바뀌는 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지도 않으면서 한 달을 넘게 교회를 갔고,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다.
정 집사는 “옛날 간증은 비포어 애프터가 극적이었는데, 저는 ‘나 이런 확실한 기적을 체험했어’라는 게 아니라 좀 밋밋하다. 근데 그 애매한 만남으로 충분히 인생이 전복될 수 있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압도당하는 경험이었다. 너무나 가늘고 너무나 찰나였지만,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게 확실하게 제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 모든 걸로 또 대치가 안 되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이 들어왔다. 이 고백이 저를 꼼짝 못하게 한다”고 했다.
정 집사는 “저는 저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했다. 제 스스로도 끔찍할 만큼 초라했고 비참했다. 모든 요구 조건에서 다 비껴나간 존재인 것 같았고, 나는 쓸데없이 버티고 있는 인형 인간인 것 같았다”며 “근데 그분이 그냥 쓱 들어오셔서 그런 걸 다 찢어내고, ‘너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하셨다. 내가 이렇게 압도적인 사랑을 받아도 되나,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그래서 처음 터져 나온 말이 ‘주님 죄송해요’였다. ‘주님이 저를 이렇게 사랑하는 줄 몰랐어요. 제가 주님이 계시는지 몰랐어요’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조롱하고 비아냥거렸던 모든 주님과 관련된 것들이 꿀꺽꿀꺽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감사가 밀려왔다. 사랑한다는 위로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너무나 근사해질 수 있다는 그 희망까지 총체적인 과거 현재 미래의 정답을 꽂아주셨다. 견딜 수 없이 벅차고 기뻤다. 감사가 밀려오니까 ‘내가 하나님 만나면 이거 따질 거야.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했던 게 다 날아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랑받는 것에 대한 감사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고 너무 싫어하는 제 스스로를 예뻐하고 용서하게 된 것처럼, 감사 앞에서는 어떤 감정도 어떤 의문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며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했다라고 느껴진 순간부터 미친 듯이 웃는다. 상황은 안 바뀌는데 너무 다 아름답다.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 집사는 “근데 문제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제가 뜨거워질수록 너무 무섭게 변해갔다.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무기 같은 걸 베개 밑에다 넣어놓고 잔 적도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해칠까 봐 방송을 하면서도 계속 연락이 오면 막 미친 듯이 달려간 적도 있고, 응급실에서 어머니를 구해낸 적도 있다. 근데 (대중에게) 이걸 들키면 안 된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근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또 병원으로 호송됐다. 공포와 분노 때문 통제가 안 됐다. 교회에 가서 ‘내가 죽든 아빠가 죽든 둘 중에 하나는 갈 거’라고 열이 받아서 씩씩대고 있었다. 그런데 제 머리가 식어가면서 조금 진정이 되니까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아빠를 좀 안아 줄까 싶었다. 이게 제 생각이면 미친 거다. 아빠랑 맞짱 뜨고 끝을 보겠다고 했는데 아빠를 안아 주다니.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 주시는 메시지 아니죠?’ 이랬다. 한 시간 넘게 울부짖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집에 들어갔다”고 했다.
정 집사는 “‘내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난 모르겠어요. 하나님, 솔직히 나는 나를 못 믿겠으니까 하나님이 해결해 주세요’ 이러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까 목탁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술상을 놓고 불교 채널을 틀어 놓고 계셨다. 모녀에게 대적할 수 있는게 불교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며 “그 순간 공포가 사라지고 꼬맹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집쟁이 남자애가 보였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옆에 풀썩 앉고 아버지를 안고, ‘아빠, 내가 미안해. 신경을 못 썼어’ 그랬더니 아버지가 ‘외롭다’고 우셨다”고 했다.
정 집사는 “아버지의 고백에 얼마나 차디차게 아버지를 외면했는지 하나님이 다 보여주셨다. 내가 우리 가족의 필요악이라고 무시하고 원망했던 그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아버지가 하나님 곁에 가는 걸 방해하는 역할이었다. 아버지를 끌어안고 많이 울었다. 근데 그 이후에도 아버지가 안 바뀌었다. 그러나 놀랍게 제가 바뀌었다. 아버지가 술 드시고 이런 모습이 다 재롱으로 보였다. ‘외롭다’고 아우성치는 것으로 느껴졌다. 긍휼함과 측은지심이 샘처럼 솟아올랐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가 주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며 아멘을 외치기까지 25년 정도 걸렸다”며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그 출애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도가도 끝이 없고 불기둥 물기둥 다줘도 만날 의심하고 그러는데, 그게 저였다. 큰 그림으로 보면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세워 놓았는지 알지만, 나는 그림 안의 퍼즐이기 때문에 난리치다 감사하다 극성스럽게 25년이 지나갔다. 그 안에 감동도 있고 뉘우침도 있고 재정립도 있었다. 고난에 대한 공식을 배웠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면 인간은 고난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시면 상처와 고난이 인간을 우쭐하게 하는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며 아버지에 이은 두 번째 시련에 대해 털어놨다.
정 집사는 “어릴 때는 가정 생활이 원만하지 못해서 큰 희망은 없었는데, 예수님 믿고 나서 가정예배 드리고 평온하고 좀 육두문자 안 날리는 집에서 살고 싶은 희망이 생겼다. 그런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신앙이 없었지만 신앙을 가지겠다고 약속했고, 같이 예배드리고 울며 기도하는 행위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10개월 있다 떠났다. 그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너무나 비극적인 방법으로 내 곁을 떠났다. ‘왜 그랬을까. 왜 난 몰랐을까. 왜 눈치 못 챘지. 돈 문제를 나한테 왜 얘기 못했을까’, ‘만약에’라는 생각이 제 뇌를 갉아 먹었다. 밥도 먹을 수 없고, 하늘을 볼 수도 없고, 모든 살아 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 거기에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오니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언론, 방송국을 향한 분노를 모아 비난의 화살과 절망의 화살을 하나님께 향했다”고 했다.
정 집사는 “미치광이 같은 기도의 기복이 몇 날 며칠을 반복했다. 술과 수면제를 때려 넣고 정신이 몽롱해서 하루종일 베란다 밑만 내려보는 제가, 어머니는 얼마나 끔찍하게 두려웠을까. 어느 날은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종지부를 찍으려 했는데, 어머니가 제가 모은 약을 발견하고 변기에 버리는 사건이 생겼다. 제가 어머니 앞에서 ‘나는 살 수가 없어. 아파서 살 수가 없어. 살아갈 힘이 없어’라고 울부짖으면서 그 약을 팔뚝으로 끌어냈다”고 했다.
그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다는 정 집사는 “제 눈이 세상 누구보다 슬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눈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살인마가 살인을 앞두고 웃는 것 같았다. 살면서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다. 바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절박하고 솔직한 고백을 했다”고 했다.
“살려 주세요. 제가 너무나 무섭습니다. 살려 주세요.”
그 기도 끝에 잠잠한 평화를 찾은 정 집사는 다시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이렇게 할 테니까 이렇게 해 주세요’하고 하나님과 거래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자신이 어떻게 살길 원하실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됐다고 했다.
정 집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길을 무시무시하게 열어주셨다. 이전의 전 공동체의 힘, 연합의 힘, 그렇게 많이 믿지 않았다. 독선적이었다. 그런 제게 하나님께서는 연합을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을 계속해서 믿음으로 실어 주셨고, 일련의 기회를 통해 크리스천들과 협력하여 선을 행하게 해주셨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 주셨고, 말씀을 향해 가져야 할 자세,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원하는 일을 말씀해 주셨고, 그제야 다른 이의 기도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 집사는 “저는 제 상처가 우상이었던 것 같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상처와 고난을 깔보게 만들었다”며 “하나님께서 싹 감아서 안아주시는 그 회복은 그 상처를 감지하게 해 주신다. 눈물을 감지하게 해 주신다. 그 사람 옆에서 말 없이 앉아서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고, 그 사람 옆에서 말 없이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싶게 만드신다”고 했다.
이어 “저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다. 사랑이 충만하지도 않다. 그 1년은 사람이 더 끔찍하고 무서웠다. 그런데 놀라운 건 저는 지금 사람이 너무 좋다”며 “여러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고 여러분이 마음 아픈 일 있을 때 옆에서 안아주고도 싶다. 저는 이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회복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소스라치게 행복함을 느끼는 제 자신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외롭고 허무해서 죽을 것 같은데, 약 없이 잘 수 없고 사람을 의심하고 피곤하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멈출 수 없는데 성공하면 뭐하나? 하나님 안에서 평화롭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하나님께 바치며 찬양하고 싶다”고 했다.
끝으로 “저는 너무 약하다. 하나님의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누구보다 사악해질 수 있다”며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 여리고 조그맣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상처투성인 아이를 보라고, 그래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일으키고 싶고, 여러분의 미래를 계획하고, 같이 손을 잡고 가고 싶다고 알리고 싶으신 것 같다. 매순간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느끼는 승리의 삶을 살아내시길 바라고 그리 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오늘도 사랑하신다. 할렐루야!”라고 축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