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이라는 단어를 이야기 할 때 철학적으로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로마식 Pax Romana. 그리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 식의Shalom 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Pax 와 Shalom 을 공히 평안 이라고 표현 합니다. 하지만 이 로마식 팍스와, 히브리식 샬롬의 평안은 내면에서 비추어지는 의미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찬수 목사님이 쓴 성령의 열매에 관한 책에 보면 "로마식 팍스는 힘으로 눌러서 얻는 평화, 그리고 히브리식 샬롬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서 일어나는 평화의 상태를 이야기 한다" 라고 말합니다.
고대 로마가 세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힘으로 군대를 동원하고 반대하는 사람을 숙청해서 목표를 달성하고 얻어지는 평안을 팍스 로마나 라고 표현한다면, 샬롬의 평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모든 조건에서 얻어지는 평안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찬송가에 이 샬롬의 평안을 이야기 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내 영혼 평안해 (It is well with my soul)" 라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시를 썼던 호라티오 스페포드(Horatio Spafford(1828-1888)는 당시 시카고에서 성공한 변호사이자 부동산 투자자였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 에나(Anna)는 1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낳고 교회에서 자선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며, 신실하게 그리고 유복한 삶을 영위했던 가정이었습니다.
1871년 그들 가족의 불행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 해에 성홍열(Pneumonia)로 네 살 된 아들을 잃었습니다. 몇 달 후 시카고 대화재 (Great Chicago Fire)로 인해 소유 재산의 대부분이 소실 되었습니다. 그들은 1873년 다시 비극이 닥칠 때까지 2년을 버텼습니다.
처해진 고통을 만회하려 온 가족이 유럽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스페포드는 가족과 함께 할 계획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사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카고에 머물 필요가 있어 가족들을 먼저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에 1873년 11월 21일, 프랑스 정기 여객선인 빌 뒤 아브르 호(SS Ville du Harve)에 호라티오의 부인 에나와 네 딸을 포함, 313명의 승객을 태우고 출항하여 미국에서 유럽으로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출항을 한지 약 4일 만에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서 빌 뒤 아브르 호는 스코틀랜드의 강력한 철제 선박인 락크 에론(Loch Earn)과 충돌했습니다. 갑자기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습니다. 에나는 서둘러 네 자녀를 갑판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네 자녀(Annie, Maggie, Bessie, Tanetta)와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를 살려주시거나, 우리에게 닥친 위험을 잘 견디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약 12분 이내에 이 선박은 4명의 호라티오 자녀들을 포함하여 226명의 승객을 대서양의 어두운 바다 아래로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배가 침몰한 지점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선원이 잔해 위에 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에나였습니다. 그는 그녀를 배에 태웠고 그들은 9일 후 웨일즈 카디프에 상륙한 또 다른 큰 배에 실렸습니다. 거기에서 그녀는 남편에게 "혼자 살아 남았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Saved alone, what shall I do?)"라는 문구가 적힌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전보를 남편 호라티오 에게 보냈습니다.
소식을 접한후 사고 선박 회사가 제공한 배를 타고 호라티오는 전보를 받은지 사흘 후 사고지점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슬픔을 상상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온 몸이 마비상태였을 것입니다. 1명의 자녀도 아닌 4명의 모든 딸들을 잃은 그의 마음이 산산조각 났지만 그 좌절감 속에서도 의심할 여지없이 영감을 받아 찬송가 "내 영혼 평안해"의 가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복음으로 인한 소망,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에 마음을 돌리며 고통을 저항하고 평안을 쟁취하여 (Peace Making) 찬양으로 고백하려는 모습이 역력히 보입니다. 그는 분명 요한 저자가 기록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의 정의를 바로 이해했던 신앙인 이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세상이 주는 평안은 평화로운 상태 (Peacefulness) 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경에 의해 너무나 쉽게 변하기 때문에 평화를 쉬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모든 조건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주님으로 인해 평안을 쟁취할 수(Peace Making)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샬롬의 평안이라 정의 할 수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쓴 책 중에 "하나님을 기뻐하라" 라는 책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말이 기이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보다 우리의
의무를 생각하는데 더 익숙해 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게획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최종 전 단계이지 최종
단계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누리는 즐거움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평안 Pax Romana 가 아닌 Shalom 의 평안을 소유할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을 죤 파이퍼 목사님의 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조건에서 우리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이 가장 우선이요, 최종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회복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모든 조건에서 평안을 쟁취하는(Peace Making) 힘을 갖추게 되는것입니다.
당시 호라티오 스페포드는 이런 사실을 바로 알고 있었기에 이 역설의 평안을 고백하여 찬송으로 남기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