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63년에 발표한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소련의 강제 수용소를 폭로하는 소설입니다. 솔제니친은 독소전쟁에 포병장교로 지원해 여러 전투에 참전했고 전공을 인정받아 1944년 7월에 적성훈장을 받았지만 사상 문제로 체포되어 수용소 생활을 합니다.

문제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친구에게 스탈린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가 발각되었습니다. 1945년 2월 사상 문제로 체포되어 수용소생활을 합니다. 일반 죄수로 중노동을 하다가 수학을 잘하는 것이 알려져서 연구원 전용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수용소 당국과 마찰을 빚고 다시 일반 수용소로 옮겨 중노동으로 온갖 고생을 다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유익한 사업을 위하여> 그리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소련 수용소의 잔학성을 세상에 폭로했습니다. 물론 그의 이런 작품들은 소련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그는 소련 당국의 미움을 받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주인공 이반은 평범한 농부로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 포로가 되었습니다. 곧 독일군에서 풀려났는데 그는 '간첩죄'로 10년형을 선고받고 수용소생활을 했습니다. 다른 죄수들과 함께 굴라크로 이송된 그는 얇은 방한복으로 영하 30도 추위에 중노동을 하며 3653일을 보냈습니다. 하루 500g의 빵, 멀건 죽, 그리고 양배추 국을 배급받아 먹었습니다.

작품은 이른 아침인 새벽 5시에 기상한 죄수 이반 데니소비치가 하루를 보내는 내용입니다. 새벽 기상을 알리는 망치 소리에 한 번도 늑장을 부린 적이 없었던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기상나팔 소리에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감기 몸살 기운을 느낍니다. 아픈 것을 핑계 삼아 작업에서 열외 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보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늑장을 부리던 슈호프는 간수에게 걸려 영창 삼일이라는 징계를 받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수를 따라 간 곳은 영창이 아니라 간수실이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간수실 청소를 할당받았습니다. 간수실 청소는 죄수들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 전에 하는 작업으로는 아주 괜찮은 일입니다.

아침 식사로 멀건 야채수프를 먹은 슈호프는 노동에서 열외 받으려고 의무실을 찾아 가보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우선 슈호프의 체온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날의 열외자는 결정되었다는 대답을 듣습니다. 슈호프는 혹독한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짧은 아침 식사 후에 아직 어두운데 슈호프와 수용소 죄수들은 점호를 하고, 신체검사를 하고 살이 찢어질 듯한 추위와 배고픔을 무릅쓰고 노동을 해야 합니다. 경호병의 감시를 받으며 그들은 그들의 하루 생활은 그들에게 할당된 작업의 양과 내용에 달려 있습니다.

슈호프와 수용소 죄수들은 생존을 위해 굴욕과 자존심의 박탈을 자주 경험합니다. 분노한 간수 앞에서 죄수들은 짐승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것은 수용소의 일상입니다. 죄수들은 오로지 "아침 식사시간 10분과 점심시간 5분, 그리고 저녁 식사시간 5분을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작가 솔제니친은 세 부류로 나누어 묘사합니다.

첫째, 게걸스러운 인생입니다. 생존을 위해 내려놓은 부류입니다. 그들은 끼니때마다 퇴식구로 몰려가 그릇에 남아 있는 국물 한 방울까지 핥아먹고 남의 빵을 훔쳐 먹고 부자 죄수에게 구걸을 하고, 꽁초를 주워 피웁니다. 그들은 동료 죄수들 사이에서도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수시로 두들겨 맞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과 인격을 던진 사람들입니다.

둘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배고프고 힘들어도 결코 품격을 잃지 않습니다. 절대로 죽 그릇에 얼굴을 처박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들의 얼굴에는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뭇거뭇 한" 일종의 존엄함이 새겨져 있습니다.

셋째, 첫째와 둘째 양자 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슈호프도 이 부류에 속합니다. 이들은 대부분의 죄수처럼 하루 세 끼 밥 먹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그들도 "멀건 양배춧국 한 사발이 지금까지의 인생보다, 자유보다, 앞으로 남은 생애보다 훨씬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반 데니소비치와 그 부류는 인간이 사수해야 할 하한선은 결코 넘지 않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슈호프의 운이 좋아 행복한 하루입니다. 그 하루는 행운의 연속입니다. 아침에 게으름을 피웠지만 영창에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운 좋게 담배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또 운 좋게 옷 수선에 유용한 줄칼을 간수 몰래 수용소에 반입합니다. 점심에는 귀리죽을 저녁에는 양배추 국을 더 얻어먹는 행운을 누립니다. 이런 시시하고 사소한 것들이 슈호프의 행복한 하루를 보장하는 요건들입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생활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소개합니다. 첫째로, 놀랍게도 수용소 안에서도 보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반은 담장 쌓는 일에 몰입하여 하루해가 너무 짧다고 합니다. 작업을 마친 그는 자신이 쌓은 담장을 보며 녹슬지 않은 자신의 실력에 감탄합니다.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보람, 기쁨 그리고 성취감이 있습니다.

둘째로 수용소의 죄수들에게도 계급이 있었습니다. 죄수들이 알량한 직책과 권력을 과시하는 모습과 권력 앞에서 비굴해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셋째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죽 한 그릇과 담배 한 개를 얻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로 행복을 누립니다. 참혹한 수용소 안에서 누리는 만족과 행복이 놀랍습니다.

넷째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산자의 강력한 생존의 의지와 생존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 초라한 음식을 먹고, 그 척박한 환경에 살면서도 수용소 죄수들은 끈끈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다섯째 이 작품에는 이런 악조건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군 중령 출신의 부이노프스키와 믿음을 지키는 침례교 신자 알료쉬카 등이 그런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