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를 누군가는 '안개'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짙은 안개를 만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30m 두께의 짙은 안개의 양이 물 한 잔의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즉 한잔의 물이 약 600억 개의 작은 물방울로 바뀌는 것 그것이 안개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물을 컵에 한 잔 따라놓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잔의 물이 600억 개의 작은 물방울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으면 앞이 보이지 않고 두렵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염려는 그와 같은 것입니다. 사실 염려는 물 한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염려하면 할수록 그 물방울은 더욱 짙은 안개가 되어 우리의 삶을 온통 어둡고, 두렵게 만들어버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에 염려의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 내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가야할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마저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나 혼자인 것처럼 보여 더욱 나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실상 염려에서 헤어 나오기란 쉽지 않은 것을 누구나 경험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묵상하기 원하는 새찬송가 370장 통일 찬송가 455장에서는 우리가 염려에서 해어 나올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염려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요? 먼저 1절에 보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1절에선 작자는 주안에 거함과 동시에 근심이 사라졌음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짐을 내려놓게 되자 마음에 평온을 얻게 됨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2절에서는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 날에 한 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물론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예외는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욱 기도했고 한숨이 차오를 때 찬송을 부르며 주님에 도우심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온과 위로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찬송가 370장 의 작사자인 히윗 여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태생의 교사이며 찬송작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학교에서 불량학생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척추를 닫쳐 7년 동안 투병생활 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다가 도리어 봉변을 당하여 오랜 기간 동안 병상에서 지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윗 여사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병실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찬송을 흥얼거리며 빗자루 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히윗여사는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서 흥얼거려요 라며 버럭 역정을 내었던 것입니다.
그때 흑인 청소부는 밝게 웃으며 "나에게 닥친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라고 한 마디가 히윗 여사의 마음에 깊이 박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히윗 여사는 전기의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의 불평과 증오로 가득찬 나날에 대해 부끄러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깊이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쏟았으며 입술로는 본 찬송시를 읊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후 말하길 "나는 깊은 회개를 경험하였고 그 순간 아름다운 찬송시를 노래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히윗여사는 많은 찬송가 작시와 청소년 선도에 일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지금의 상황에서 염려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건지시는 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아가 우리의 짐을 예수님 앞에 풀었을 때 평온과 위로가 찾아오게 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