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유대인 최고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고 정죄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7절에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려간 예수는 산헤드린의 세 당파의 대표자들인 대제사장,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과 대질합니다. 유대 사회의 원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산헤드린은 로마 총독의 통제하에 유대인 내정을 관장하는 최고 기관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이라는 표현이 신약성경에 22회 등장합니다. 복음서에 5회 등장하고, 사도행전에 14회 등장합니다. 그리고 서신서들에서 세 번 산헤드린이 등장합니다. 성경에는 산헤드린이라는 이름이 아닌 '공회(Council)'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을 소개하면서도 누가는 산헤드린 이라는 표현 없이 '공회 의원'이라(눅23:50)고만 언급합니다.
성경밖에도 많은 자료가 산헤드린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탈무드나 랍비문서에 산헤드린은 자주 등장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도 산헤드린에 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요세푸스는 '시리아의 로마 총독 가비니우스(Gabinius)가 B.C. 57년에 이스라엘에 5개의 산헤드린을 만들었다'라는 기록을 남깁니다. 이는 예루살렘 외에도 작은 산헤드린이 다수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산헤드린의 설치와 운영에 로마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역사의 격동기을 거치면서 유대인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기관들을 두었습니다. 우선 회당입니다. 유대인은 성인 남성 10명 이상이 있으면 회당(Synagogue)을 보유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많은 회당이 있었고 예수님이 방문하신 지역마다 회당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방문했던 도시들에서 가장 먼저 회당을 찾았던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회당과 더불어 산헤드린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 성인 남자 120명이 거주하는 곳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지방의 소도시일 경우 산헤드린의 정원은 71명이 아닌 23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첨예한 갈등을 막기 위해 인원이 홀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사회에 다수의 산헤드린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로마제국은 많은 점령지를 쉽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점령지의 상황에 맞게 지방자치정부와 지방문화와 종교를 허용하였습니다. 이것이 로마제국의 문화 정책이었습니다. 로마는 유대교를 인정했고, 초대교회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로마 정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로마 정부의 문화 정책에 편승해서 유지되고 운영된 자치기구가 바로 유대인 최고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산헤드린의 기원은 모세가 광야에서 자신을 대신할 지도자 70명을 임명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물론 광야의 지도자들과 산헤드린의 기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임명한 70인의 지도자들이 성막 근처에 자리 잡았습니다. 성전 건축 후에는 산헤드린 공회가 성전 경내에서 모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경내에서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교 관련 사항도 관장하게 되었고, 많은 종교 재판을 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 사회에서 행정권, 입법권 그리고 사법권을 행사했었습니다. 특히, 종교적 사안까지 관장함으로 산헤드린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국민을 다스리기 위해 최소한 매질할 권리와 투옥할 권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종교범은 자체 판결로 투석형(사형) 집행이 가능했고, 정치범에게는 로마 정부의 인정하에 십자가형(사형) 집행도 가능했습니다. 스데반은 산헤드린의 결정에 따라 성소 모독이라는 종교법 범법자로 투석형으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불법적 요소가 많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판결을 내리지만(마26:65; 막14:64), 청중들을 두려워해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기며 정치범 으로 둔갑시킨 것을 증언합니다. 예수님 십자가형은 반란음모자에 대한 처형이었습니다. 신성모독죄로 시작된 재판이 정치범 재판으로 끝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재판 과정이 불법임을 복음서 저자들은 고발합니다.
산헤드린의 다양한 불법은 헤롯 왕가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요세푸스는 '헤롯이 왕이 되기 전에 그가 행한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불법적 폭력과 처형으로 산헤드린이 그를 고발하고 심문하려 했을 때, 헤롯은 오히려 무력으로 공회원들을 죽이고 자기의 사람들로 공회를 채웠다'라고 전합니다. 그 후에 헤롯 가문의 왕들이 산헤드린을 유린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대제사장,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로 구성되었지만, 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습니다. 산헤드린의 의장을 '나시(nasi)'라고 불렀는데, 로마제국은 산헤드린을 통제하기 위해 산헤드린 의장인 나시를 임명권을 행사했습니다. 유대지방 총독의 주요한 임무가 산헤드린 통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시절의 산헤드린 의장은 로마 총독 코포니우스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 안나스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재판 당시의 산헤드린 의장은 가야바였습니다. 그는 안나스의 사위로 대제사장으로 취임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신 산헤드린 법정은 가야바의 법정이었지만 영향력은 안나스가 더 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온갖 죄악과 불법이 가득한 가야바의 법정이 의로우신 예수님을 정죄한 것은 인류 죄악의 아이러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