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준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2-14).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1-3).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2-14).
위에 언급한 몇 구절을 보면 우리의 믿음은 끊임없이 자라고 성숙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주를 믿은 지 오래 되어서 이제는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여 믿음의 초보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영적인 성숙이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은사가 풍성한 고린도교회의 경우를 보면 사도 바울은 그들이 아직도 영적인 어린아이들과 같아서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는 젖과 같은 영적 음식을 먹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사도로 불리우는 사도 바울도 스스로 고백하기를 그는 아직도 주님이 세우신 푯대에 이르지 못하여 여전히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하면서 믿음의 성숙은 이 땅에서 불가능한 것을 말한다. 그래도 푯대를 향하여 쉬지 않고 달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곧 영적 성숙인 것이다.
많은 것들이 왜곡되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부도덕과 부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납되는 이 시대에는 남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영적인 미숙아보다 성숙하여 남을 돌보고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더 요구된다. 복음 전도를 받고 거듭나는 놀라운 영적 열매도 중요하지만 그들은 갓 태어난 아이와 같아서 피동적이며 모든 면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제는 교회와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더 필요하다. 비단 교회만 아니라 정계와 교육계, 문학계, 예술계, 스포츠계에도 보다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죄와 불의에 대하여 항거할 수 있는 믿음의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2-14).
영적 성숙은 무엇인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15).
영적 성숙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다. 또한 영적 성숙에 관한 정의는 수 없이 많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으며 대부분이 영적 성숙에 대한 여러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성경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여 공통적인 요소들은 어떤 것들인지 상고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 6:1-3).
1) 영적 성숙이 아닌 것
누가 과연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인가? 일반적으로 "성장" (growth)은 외부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뜰의 꽃이 자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 그들이 성장하는 것이 확실하다. 아이의 성장을 보면 우선 키가 자라고 체중이 늘며 언어가 변하고 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어린 아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해서 실증을 내고 다른 것을 원한다. 어릴 적에 즐기던 만화 영화의 종류도 달라지고 글을 배우면서 책을 접한다. 처음에는 큰 글짜로 된 것을 읽다가 점차 작은 글씨로 된 책을 읽고 또 항상 엄마 곁에 붙어 있다가 이제는 혼자서도 잘 지낸다. 그가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적인 성숙은 대체로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성경의 기본적인 것에 늘 질문과 의심이 많던 사람이 그런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고, 성경 읽기와 기도에 늘 게으르거나 무관심했던 사람이 그런 것에 열심을 내는 것을 보면 그의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헌금할 줄 모르던 사람이 정기적으로 헌금하거나 섬길 줄 모르던 사람이 헌신적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면 그가 영적으로 성숙해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 지식과 기도, 봉사와 헌신 자체가 영적 성숙의 확실한 지표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학대학 교수나 기도원에 자주 가는 사람은 모두 영적으로 성숙한 것인가? 또한 봉사단에 참여하는 사람은 성숙한 자인가? 그런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