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선교사의 평양에서 순교는 교회사적 의미로 볼 때에 사망의 그늘에 앉은 조선인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의 순교는 그후에도 연속성 있는 북한 교회 역사로 이어지게 된다.
1866년 9월 2일에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지 8년이 지난 1874년, '스코트렌드 연합장로교회' 출신인 죤 로스(John Ross, 1842~1915)가 중국 산동성 엔타이(지프)에 같은 스코트랜드 출신인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llamson, 1829~1890)을 방문한다.
이때에 죤 로스 선교사는 선배 선교사인 윌리암슨으로부터 잉글랜드 웨일즈 출신인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에 선교를 하러 평양으로 들어갔다가 순교를 당하였다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아 토마스 선교사가 이루지 못한 조선 선교의 바통을 자진하여 이어받게 된다.
윌리엄슨 선교사는 조선 선교의 멘토이기도 하였다. 그는 토마스에게 백령도 출신의 천주교인 김자평을 소개해 주었고, 토마스가 셔만호를 타고 조선으로 갈 때도 많은 성경과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윌리암슨은 다시 죤 로스로 하여금 조선 선교를 결심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죤 로스는 만주 봉천(요녕성 심양)에서 중국 선교 사역을 하며 동시에 조선 선교도 행하였다. 그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1874년 10월 9일에 청나라와 조선의 완충지인 안동(단동) 외각에 있는 '고려문'(高麗門)과 압록강과 애허강이 합류하는 곳까지 와서 강 건너의 조선 평안도의 의주 땅을 바라보고 돌아갔다. 그곳은 나룻터가 있었으며 오랜 동안 조선의 사신들과 봇짐 장사들의 통행로였다. 그의 여행은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탐방이었다.
그는 2차에 걸쳐 고려문을 방문하면서 의주 출신이며 봇짐 장사꾼들인 백홍준을 알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서상륜과 서경조와 이응찬, 김진기를 만나 저들을 전도하여 제자로 삼았다. 죤 로스는 심양 '동관문교회'에 '문광서원'을 만들어 조선 청년들과 함께 조선어 성경을 번역하여 조선인들에게 전해 주기 위한 사역에 중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서는 한문에 능통한 조선인 번역자가 필요하였다. 놀랍게도 이에 가장 적합한 번역자가 서상륜이었다. 그는 의주 출신의 몰락한 양반 가문의 한학자였으며 동생과 같이 생계를 위해 청나라를 드나들면서 홍삼 장사를 하고 있던 중에 죤 로스 선교사를 만나서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조선어 성경 번역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여 년 전에 토마스 선교사가 평양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 성경은 한문 성경이었으나, 이제 죤 로스 선교사와 조선인과 함께 조선어 성경을 번역하여 조선인들을 위한 성경을 만든다는 것은 조선 교회사의 큰 획을 긋는 의미있는 일이며 토마스 선교사의 미완의 사역을 완성시키는 것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 당시 조선에서 한문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였기에 한글 성경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전파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번역 사역이었다.
이처럼 죤 로스 선교사가 조선 본토가 아닌 중국에서 조선어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하게 된 것은 조선에서는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전도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중국에서 이런 사역을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도면밀한 계획이셨다.
무엇보다도 중국어 성경(마쉬만, 라싸르 역)이 1820년 역과 1852년의 개정 한문 성경이 만들어 졌음으로 조선어 성경 번역은 매우 수월하였다. 조선 언어의 어휘가 대부분 중국어였기에 성경 본문의 의미 전달이 수월하였다. 그러므로 한문에 능한 서상륜의 참여는 최적의 조합이었다. 죤 로스 선교사는 헬라어와 자국어 영어를 한문 성경과 조선글과 대조할 수 있었으므로 그 당시에는 가장 적합한 성경 번역문(Bible Text)이 될 수 있었다. 최초의 조선어 번역에는 평안도 방언을 표준하여 번역되었기에 이북지역의 주민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성경이 될 수 있었다.
이 당시 아시아에서의 성경 번역은 대부분 서구의 선교사들이 직접 그 나라 언어와 문자를 익힌 다음 그 수준에 의해 번역되었다.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이 그러했다. 그러나 조선어 성경은 오히려 모국어를 사용하는 조선인이 주축이 되어 자국어로 번역했다는 것은 그만큼 번역에 적합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죤 로스와 조선인들에 의한 최초의 성경 번역은 1882년에 '누가 복음서'를 먼저 번역 출판하였기에 '쪽복음'이라 하였으며 1887년에는 신약성경인 '예수셩교젼셔'를 번역 출간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한글은 언문이라 경시하였기에 식자층과 양반들은 한문을 선호하였지만, 일반 백성들과 아녀자들은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한글을 선호하였기에 오히려 조선어 성경이 대중화하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되어 조선의 복음화와 문맹 퇴치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조선 자국인과 죤 로스 선교사와의 공동 번역은 한국 교회사와 이북 지역의 복음화에 큰 공헌을 하였고 교회 성장에 큰 잠재력을 제공한 것이었다.
한글 성경을 조선인 손에 쥐어 준 죤 로스 선교사는 토마스 선교사가 평양 대동강에서 나누어 준 한문 성경에 이은 20년 만에 성취된 두 번째 성경이라 할 수 있으며 조선인들을 향한 구원의 완성도를 교회사적으로 진일보시킨 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이 조선어 성경이 압록강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전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