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신중성
리더는 말과 행동에 있어서 너무 가볍거나 조급하지 않고 진실하고 신중해야 한다. 특히 영적 리더는 너무 가볍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거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설교자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것처럼 말하는데 매우 주의해야 한다. 즉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7)는 말씀을 인용하여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것을 본다. 물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보여 주셨고 또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시대에 와서 스스로 선지자라고 말하면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극히 주의해야 할 일이다.
또한 성급하게 어떤 것을 약속하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침착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라. 우리는 종종 기도를 부탁하는 이들에게 대하여 기도해 주겠다고 "쉽게" 약속한다. 그리고 돌아선 후에 깜빡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이것도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부탁을 받는 경우에 즉시 기록해 두어 잊지 않고 기도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내 서재의 한쪽 벽에는 내가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이 상당히 많이 적혀 있다.
무슨 일을 성급하게 결정한 후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면 그런 리더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리고 누가 리더의 실수나 문제점을 지적하면 분노하거나 변명하지 말고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고치는 용기도 필요하다. 실제로 담임 목사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교회에 재정적인 큰 손해를 끼친 일도 보았다.
하나님의 일은 영혼을 구하는 가장 위대하고도 가치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일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소홀히하는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 대하여 소홀히 대하거나 아이들의 질문에 성의없이 답변하는 경우가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매우 "엉뚱한" 질문을 하는데 그런 때에 성의있게 답변해 주거나 혹시 대답할 수 없으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후에 연구해서 알려 줘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선지자 사무엘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 것처럼 말에 담겨진 권위가 있게 하라 (삼상 3:19).
8) 협동심
독재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흔히 아무와도 의논하거나 의견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밀어부치는 것이다. 그런 방식이 먹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일방통행식의 사역 방식은 동역자를 잃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몸처럼 모든 지체가 서로 합력하여 팀을 이룰 때에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리더 혼자서 결정하고 일방적 통보식으로 하게 되면 다른 동역자들은 책임을 회피할 뿐 아니라 남의 일로 여길 수 있다.
바울이 위대한 전도자이지만 그가 모든 것을 혼자 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성실한 동역자들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여행하고 함께 사역했다. 그는 실라와 함께 전도했고 감옥에도 같이 갇혔으며 디모데와 함께 동역하고 누가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고난도 받았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평생 성공적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고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50 년 이상 더불어 사역한 여러 충성스런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라!"보다 "합시다!"가 더 좋은 결과를 낸다. 일에 대한 공력은 함께 나누되 책임은 리더가 지고자 하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말로는 조금, 행동으로는 약간, 삶으로 가장 많이 가르친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어떻게 그들 가운데 있으면서 말하고 행동하면서 복음을 전했는지를 말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5). 이 내용을 간단히 분석하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적어도 다섯 가지 측면으로 접근했다. 즉 말로 전하는 것, 능력이 나타난 것, 성령의 역사, 큰 확신 그리고 그 자신의 사람 됨됨이를 보여준 것이다.
9) 경건성
영적인 사역의 힘은 경건성 즉 하나님을 닮은 것에서 나온다. 이 시대는 종교의 외향적인 것을 많이 강조하여 화려한 복장과 예식이 중요시되는데 우리에게 정작 더 필요한 것은 경건의 능력이다. 경건은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에서 온다. 그러므로 경건을 항상 연습하고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8).
경건성과 종교성은 같지 않다. 종교성은 성령이 없이도 가능하지만 참된 경건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은 허망한 종교일 뿐이다 (딤후 3:5). 기독교의 일부 종파에서는 사제가 라틴어를 사용함으로 청중은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며 또한 알 수 없는 예식을 통하여 "경건의 모양"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곧 경건의 능력은 아니다. 유대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경건의 모양을 갖췄지만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기 때문에 참된 경건을 모르는 것이다. 가장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종교성은 가질 수 있었도 참된 의미의 경건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유혹과 시련에서 건지신다 (벧후 2:9). 그리고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요 9:31). 영적 리더는 외향적으로 큰 교회나 기독교 단체의 대표이기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하고 그리스도를 잘 드러내는 자라야 한다. 그러므로 경건한 생각을 하며 경건한 행동과 삶을 살도록 스스로 끊임없이 훈련하라. 할 수만 있으면 불의하고 불경한 것들을 보고 듣고 접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숯을 손에 쥐면 어쩔 수 없이 손에 검은 것이 묻는 것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고 버리라. 말에 실수가 없게 하고 경박한 행동에 조심하되 외식적인 종교성을 피하라.
10) 정직성(Integrity)
이 말에는 단순히 정직한 것 이상의 뜻이 있다. 변심하지 않고 일관성이 있으며 순수함을 지니는 것이다. 앞과 뒤가 다른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차이가 없어서 삶의 투명함이 보이는 것이다. 순전함은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뢰성에 있으며 실력에 있지 않고 순결함에 있다. 영적 리더에게 이 순전함은 마음에 숨긴 것이 없고 "맑은 영성"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의 극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캠패인을 벌이면서 자신은 지나치도록 호화스럽게 산다면 누가 그의 진정성을 믿겠는가?
하나님은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고 (잠 2:7)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다 (잠 10:9). 신독(愼獨) 즉 아무도 주변에 없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진정한 자기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
대중 앞에서는 누구나 멋지고 품위를 지킬 수 있지만 혼자 있을 때와 그 마음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11) 결단성
이것도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자격 조건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와 정보가 충분히 갖춰진 후에는 신속하고도 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일 해야 할 일에 대한 방향과 목적과 방법에 대한 명확한 결정 사항이 없으면 아무도 그를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고 머뭇거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일을 결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지도자의 위치가 흔들리고 리더십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일단 결정한 후에 상황에 따라서 그것을 자꾸 변경하거나 추진하지 않고 미룬다면 그것 또한 리더십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리더가 신중하게 기도하고 지혜롭게 결정한 후에도 실수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라도 결코 타인을 비난하거나 환경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며 하나님께 더 매달려서 그런 것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분명한 목적과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여 많은 방해 공작과 위협과 난관을 무릅쓰고 끝내 그 작업을 완성했다. 공사 도중에 많은 유혹과 훼방이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원래의 목적에 집중했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호수아도 훌륭한 리더이다. 그 시대에는 사방에 우상도 많아서 많은 백성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는 자기 가족과 함께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단했다. 그리고 강력한 모세에 비하여 어리고 약했지만 그 많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둘어갔다.
사도 바울 또한 결단력이 강한 지도자이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직후에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묻고 그로부터 약 3 년간 아라비아에 머물면서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난 후에 순교할 때까지 주님이 주시는 확신을 따라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특히 그가 로마를 향해서 가던 길에서 보인 그의 결단력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