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사도바울은 선교를 위해 새로운 도시(지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회당을 찾았습니다. 회당이 없었던 루스드라와 빌립보 두 도시(지방)를 제외하면 모든 지역에서 회당을 찾아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하자 마자 찾아갔던 다메섹 회당까지 포함하면 9개 도시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당을 잘 활용하였고 회당을 통해 사역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회당은 예수님도 활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며 병자를 고치셨고,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던 기록이 4복음서에 골고루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 사역을 통해서 칭송(눅4:15)받으시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신 것이 바리새인과 갈등의 원인(마12:9~14)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회당이 56회 등장합니다. 복음서에 회당이 34회 등장합니다. 회당을 빼 놓고는 예수님 사역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총장을 지낸 고세진 박사는 시카고 대학교 신학부에서 성서 고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예루살렘 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했던 고고학 학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회당 사역을 자세하게 분류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회당사역을 간략하게 간추리면 4가지 사역, 즉 성서해석, 자신증거, 치유사역, 축신사역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회당이라는 말이 19회 등장합니다. 스데반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헬라파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도 바울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회심이전에도 회당에 출입하였습니다. 아마도 다소에서 이미 회당 교육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에서 돌아와 회당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성인이 된 사도 바울은 기독교 신자들을 핍박할 때에도 회당을 활용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체포해온 기독교인들을 회당에서 때렸다(행22:19)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새로운 도시를 가면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며 회당을 지역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규례대로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셨던 것(눅4:19)처럼 바울도 자기 관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행17:2)합니다. 구약을 알고 구약이 예언하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예수가 메시야라고 전하는 것은 훌륭한 선교 전략이었습니다. 아울러 바울은 로마황실이 '지배국 문화 존중 정책'을 활용하였습니다. 로마가 인정하는 유대교 회당에서 진리를 전하면 로마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회당을 활용하면 바울은 보호 받을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회당(Synagogue)은 '함께 모인다(Synagain)'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회당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모임'을 의미했습니다. 회당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바벨론 포로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고 포로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은 바벨론 여러 강가에서 기도하며 울었습니다(시137:1~2). 그러다가 회당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구약에 회당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편 74편 8절에 등장하는 회당은 '백성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이 회당이 우리가 논의하는 회당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외경인 마카비서에도 회당은 없습니다. 포로기에 미미하게 시작한 회당이 신구약 중간기 말에 활짝 피어났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회당은 보편화되었고,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유대에 400여개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1세기 말엽 전 세계에 1000여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회당은 유대인 남자 성인 10명 이상이 있어야 설립이 가능했습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남자 성인 10명이상만 있으면 회당을 지어 신앙을 전수하고 유대인 문화와 전통을 지켰습니다.

회당장이 회당의 운영과 관리를 책임졌습니다. 성경에도 회당장 야이로를 위시해서 몇 사람의 회당장이 등장합니다. 회당마다 세 명의 회당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린도 선교에서 두 사람의 회당장(그리스보, 소스데네)이 등장합니다. 이 두 회당장이 같은 회당을 섬겼거나 고린도 여러 개의 회당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회당이 포로시절에 시작되었다고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회당의 기능 때문입니다. 회당의 기능은 유대인들의 종교, 문화 그리고 생활 중심(herb)이었고 지금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센터의 기능을 유지합니다. 회당이 이방 땅에서 유대인의 신앙과 언어 그리고 문화를 지켰다는 증거입니다. 다양한 회당의 기능은 회당의 다양한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회당의 다양한 이름을 열거해보면 베트 하테필라(기도의 집), 베트 하크네세트(집회의 집), 베트 미드라시(학습의 집), 베트 세페르(책의 집), 베트 크네셋(만남의 집) 등등입니다. 회당의 다양한 이름들이 이방 땅에서 포로로 살면서 회당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기도를 하며, 토라를 읽었던 유대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의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회당은 학교, 기도실, 예배당, 문화학습장 그리고 법원역할을 했습니다. 회당은 1세기 중엽에는 외인을 환대하는 여관역할도 했습니다. 회당에서는 매일 예배를 드렸고, 안식일 예배에는 율법학자가 율법을 가르쳤고, 존경하는 손님이 방문하면 초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이 제도를 활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