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왕 권속 중에 예수를 믿었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성경에 언급된 사람들을 찾아봅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자신의 재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깁니다(눅8:3). 헤롯 안디바의 젖동생 마나엔은 안디옥 교회 지도자가 됩니다(행13:1). 헤롯의 아들 아리스토불로스 집안은 로마 교회 성도(롬16:10)였던 것 같습니다(추후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헤롯 가문의 왕들은 대부분은 반 기독교적인 정책을 펼쳤고, 예수님을 박해하거나 기독교 신자를 박해하는 악역을 맡았습니다. 헤롯 가문의 죄악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 가문은 6대에 걸쳐 90년간 유대 땅을 지배합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 집안이었습니다.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이 헤롯 아그립바2세입니다. 신약 성경에 헤롯이라는 이름이 45회 등장합니다. 특별한 설명과 이름에 대한 구분이 없이 사용됨으로 헤롯에 대한 이해가 모호합니다. 성경의 헤롯들과 헤롯 가문을 이해하는 것은 로마와 유대인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다.
헤롯 가문 중에 헤롯 대왕과 방불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헤롯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리스토불루스는 하스몬의 왕족 마리암네의 아들입니다. 아리스토불루스는 고모 살로메의 딸 베르니게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 즉 헤롯 칼키스, 헤롯 아그립바1세, 아리스토불루스, 헤로디아, 미리암네를 낳았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아리스토불루스가 아리스토불루스 4세로, 로마 16장 10절에 등장하는 아리스도불로입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는 네 남매를 남기고 54세에 죽습니다. 이렇게 남겨진 네 남매는 당시 17세였던 아그립바2세와 16살의 베니게, 마리암네 그리고 드루실라입니다. 당시 정세를 보아 약관 17세의 아그립바2세가 아버지 아그립바1세를 이어 유대를 통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그립바2세는 당분간 로마 황궁에 머물고 파두스에 이어 티베리우스 알렉산더가 유대 총독으로 파견됩니다. 이 알렉산더가 필로의 조카입니다.
아그립바1세 자녀들의 삶이 기구합니다. 베니게는 알렉산더의 동생 마르쿠스 알렉산더와 결혼했는데 그가 요절하였고, 삼촌인 칼키스의 헤롯과 결혼했는데 그도 죽습니다. 오빠인 아그립바2세와 같이 지내다 근친상간의 소문이 돌자 길리기아 왕과 재혼하였다 곧 이혼합니다. 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티토(Titus)장군이 베니게를 사랑합니다. 티토 장군은 베니게를 사랑해서 그녀를 로마까지 데리고 가지만 로마 사람들이 그녀를 용납하지 않자 티토는 독신으로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48년에 칼키스의 헤롯이 죽자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친구의 아들인 아그립바2세에게 칼키스의 통치권을 주고, 이어 유대지역 왕으로 세워줍니다. 이어서 53년에 헤롯 빌립의 지역도 헤롯 아그립바2세에게 넘겨줍니다. 아그립바 2세는 유대 지방에 왕이 되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증손자요, 비운의 왕자 아리스토불로스의 손자인 아그립바2세가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는 가이사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도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재판 받기를 간청할 때 가이사랴를 찾아가 바울을 만납니다. 아그립바2세는 벨릭스의 후임으로 부임한 베스도 총독에게 베니게와 함께 인사하러 가이사랴를 방문합니다.
사도행전에는 헤롯 안디바(행4:27), 헤롯 아그립바1세(행12장) 그리고 헤롯 아그립바 2세(25장)가 등장합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기독교 신앙인들을 박해하면서까지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 했고, 그의 야욕과 교만 그리고 죽음을 언급합니다. 사도행전 25장은 아그립바2세가 바울의 무죄를 알고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암시적으로 지적합니다.
사도행전과는 달리 요세푸스는 아그립바1세와 아그립바2세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아그립바2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글을 아그립바2세에게 보여주고, 자료도 제공 받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관계를 고려하면 아그립바2세나 그의 아버지 아그립바1세를 비판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푸스는 아그립바1세를 동포인 유대인을 위한 정책을 쓰고, 예루살렘에 즐겨 거하고, 율법 제사를 준수했으며, 유대인의 회당 문화를 보장한 왕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아그립바1세가 뛰어난 정치력과 설득력으로 가이우스 칼리굴라황제와 클라우디우스 황제 등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역사를 남깁니다.
요세푸스와 유사한 관점을 가진 역사가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입니다. 필로는 간략하지만 아그립바1세를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필로의 조카가 아그립바1세 딸 베니게와 결혼했으니 아그립바1세와 사돈이었습니다. 필로는 가이우스 칼리굴라황제의 무도함을 비난하면서, 아그립바1세는 유대 신앙에 독실하지만 유약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이 그리는 아그립바2세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답게 철저하게 친 로마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같은 로마 황실 인맥도 없고, 시대적 환경도 만만치 않아서 무기력하게 왕좌를 지키다 70년경에 예루살렘 패망 때 로마로 가서 로마 행정관이 되었으며 AD 100년경에 사망했습니다. 이렇게 헤롯 가문이 몰락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