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장저우에서는 대홍수가 덮쳐 최소 12명이 숨지고 1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허난성에선 터널 등지에 고립돼 있던 500여 명이 극적으로 구조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홍수현상은 중국뿐 아니라 유럽각국에서도 발생해 독일에서 133명, 벨기에에서 27명, 이탈리아에서 1명을 포함하여 최소 162명이 홍수로 사망하는 등 지난 7월 16일 기준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 외에도 약 1300 명이 실종되는 등 심각한 자연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항상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자연재해(自然災害)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 말에 의미는 인간은 한시도 자연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때론 자연(自然)이 우리에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환경과 일용한 양식을 제공해 주지만 때로는 인간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재해를 통해 고통과 시련에 빠지게도 만든다.
그런데 이 같은 자연재해를 혹자는 인간에게 자연재해(自然災害)란 "인간의 탐욕(貪慾)에 대한 자연의 경고(更鼓)" 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 최근 지구에 온난화현상으로 자연재해는 매년 강도가 변해가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 인간들은 재해 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存在)임을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유엔 2000 ~ 2019년 세계 재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셰계에선 7348건의 재해가 발생했고 123만 명이 사망했으며 이로인해 3400여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원인으론 세계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1도로 치솟아 폭염과 가뭄, 그리고 홍수와 혹한, 태풍, 산불 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자연재해(自然災害)발생이 급증한 원인을 천재지변(天災地變)보다는 오존층 파괴와 같은 인간의 자연피괴(自然破壞)가 나은 결과(結果物)로 보고 있다.
그럼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어떤 해석으로 자연재해를 이해해야 할까?
물론 성경을 보면 노아의 홍수나, 소돔 고모라의 멸망 등을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혹자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자연재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재연재해(自然災害)의 원인은 인간이 조금만 조심했으면 일어나지 않을 문제라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와같은 해석이 옳은 것일까?
이처럼 우리가 자연 재해의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보통 두 종류의 해석 즉 "신학적 해석"과 "과학적 해석"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학적 해석은 'What'(무엇/왜)에 대한 대답을 준다면, 과학적 해석은 'How'(어떻게)에 대한 대답을 준다. 즉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유신론자들은 자연재해의 원인을 신의 뜻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유물론자들이나 비 신앙인들의 경우는 '우연'에 결과라고 다른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문제이지만 과학적 해석은 "How"의 영역으로 보려하느냐 아니면 신학적 해석인 "What"의 관점에 보느냐에 따라서 "신의 뜻"으로 혹은 "우연"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재난은 역사와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재난 또는 재앙을 도구로 사용하실 때 이에대한 의도를 분명히 우리에게 알리기 원하신다는 점이다. 그 예로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때의 증상을 기록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로마서 8장에서처럼 그들과 함께 신음하며, 고통에서 해방의 때를 살피며, 복음을 전하며,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는 것이 재난을 바라보는 올바른 자세라는 것이다. 그래서 재난에 대한 태도도 "주의 날이 가까워 옴을 인식하고 날마다 재림을 기다리며 경건하고 신실하게 섬겨함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의 말씀처럼 주님의 오심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럼으로 어려운 재난을 당한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베풀고, 위로하며, 복음을 전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전해 주어야 함을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