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의 소동을 피하여 바울과 실라는 밤에 베뢰아로 이동합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로부터 약 73킬로(Km) 떨어진 도시로 해발 약 2천미터인 베르미온 산(Vermion)기슭에 자리 잡았던 도시입니다. 밤중에 출발한 바울일행은 로마시대 주요 간선도로인 이그나티아(Via Egnatia)고속도로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에 방문했던 도시들은 모두 이그나티아 고속도로 선상에 있는 도시들이었습니다.
현재는 '베리아(Veria)'라 불리는 베뢰아는 바울 당시에 빌립보, 데살로니가와 더불어 마케도니아 3대 주요 도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베뢰아는 고대도시입니다. 베뢰아는 BC 9세기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베뢰아에 관한 오래된 기록은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B.C.5세기(437년)에 남긴 기록입니다.
베뢰아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마케도니아 에르게아스 왕조 시절입니다. 에르게아스 왕조는 마케도니아 왕국 첫 왕조입니다. 에르게아스 왕조를 대표하는 인물은 빌립보를 세운 필립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더 3세(대제)입니다. 필립2세는 마케도니아를 통합하였고 알렉산더 대제는 이집트와 인도까지 확대하여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시절 마케도니아 왕국은 통일 된 주화를 발행했는데 그 주화를 베뢰아에서 발행했습니다. 이 시절에 베뢰아에서 아테네와 고린도처럼 체육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는 베뢰아 체육대회는 당시 그리스 각지에서 선수들이 출전했던 국가적인 행사였습니다.
베뢰아가 영향력 있는 도시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에그나티아 고속도로의 건설되고 로마 정부가 베뢰아를 활용하면서부터입니다. 이 때부터 베뢰아는 본격적으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B.C. 2세기 중반부터 1세기에 베뢰아는 큰 변화를 겪습니다, 조용한 농업도시였던 베뢰아는 로마의 역사와 기독교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베뢰아는 원래 감, 배, 사과, 석류와 복숭아 등으로 유명한 농업 도시였습니다. 할아크몬(Haliacmon)과 악시오(Axios), 두강이 주는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질은 과일의 수확량도 품질이 탁월한 과수원 도시로 알려졌었습니다. 이런 농산물 생산 덕분에 베뢰아는 농산물 장터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에그나티아 도로의 건설덕분에 교역이 많아져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당시 베뢰아에는 많은 외부인이 찾아와 정착하였고 상당수의 유대인들도 거주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나 빌립보 같은 상업도시로는 발전하지 못했고, 장색 세공업과 석공업의 중심지로 그 이름을 떨쳤습니다. 사도바울 당시에 베뢰아는 부유한 유대인들이 정착한 도시였습니다. 바울의 선교 당시 유대인들을 위한 2차 대전 전까지 그리스 전체에는 7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했는데 그 중에 6만 명 정도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지역에 살았다고 합니다.
B.C.2세기 하반기에 마케도니아 로마 총독 나이우스 에그나티우스가 건설한 고속도로인 에그나티아는 당대 많은 도시들을 번창하게 만든 젖줄이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도로는 로마가 제국을 통제하고 효과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 만들었지만 가장 큰 혜택은 바울이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에그나티아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피드나(Pydna)전투(B.C.168)에서 로마가 이기자 로마에 투항한 첫 번째 도시가 베뢰아 입니다. B.C. 49-48년에는 시저(Caesar)에게 승리를 거두기 전 폼페이우스가 자신의 군대와 함께 지냈던 곳이 베뢰아입니다. 키케로가 데살로니가에서 피신해서 베뢰아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성경을 모범적으로 상고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아 신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베뢰아는 사도바울의 사역에 큰 결실이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전도를 방해했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와서 주민을 선동하여 소란스럽게 하자 바울은 혼자 배를 타고 아덴으로 이동했습니다(행 17:10∼15).
사도바울과 예루살렘 여행에 동행했던 소바더의 아버지 부로(행20:4)가 베뢰아의 첫 결신자로 알려집니다. 선교여행을 정리하고 마케도니아를 거쳐 아시아로 가는 길에 바울의 제자들이 동행합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바울의 제자들 가운데 부로의 아들 소바더가 동행합니다. 소바더의 동행이 베뢰아에 바울의 사역과 활발한 교회활동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이 소바더가 로마서 16장(21절)에 바울의 친척으로 소개되는 소바시더와 동일인물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천주교 교회전통(교황령:Apostolic Constitution)에 의하면 바울이 감옥에서 만났던 '오네시모'가 베뢰아 교회의 첫 번째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기독교 성인들을 기리는 정교회 달력(Calendar of Orthodox)에 의하면 바울의 겉옷을 보관했던 '가보(딤후 4:13)'가 베뢰아 교회 초대 감독이었다고 합니다. 여하간 바울의 선교로 베뢰아 지역에는 교회가 잘 세워졌었던 같습니다. 그 후에 베뢰아 지역의 기독교 활동은 활발했었고 13세기와 14세기에 세워진 베뢰아 교회들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