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소리(VOA)가 평양신학교 출신으로 평양 인근에서 직접 목회를 했다는 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와의 인터뷰를 최근 보도했다.
박 목사는 “제가 (북한에) 있을 때까지는 교회가 제대로 있었다. 제가 6·25 사변 중 1·4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며 “6·25 사변까지는 교회가 있었다. 아마 지금은 교회가 아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산당이 평양에 봉칠교회(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다고 하지만 저는 믿을 수 없고, 그 교회들은 순전히 전시용이지 신앙적인 교회라고 저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박 목사는 “공산당의 정책이 1949년도 12월까지는 평양 시내 목사들을 전부 다 가두고, 계획이 그랬다. 그 다음에 1950년도 1월에는 도청 소재지 목사들 잡아 가두고, 2월까지는 군청 소재지 목사, 3월까지는 면 소재지 목사, 4월까지는 리 소재지 목사, 계획이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6·25 사변이 터졌다”고 했다.
그는 또 “1949년도 12월까지 평양 시내 목사님들은 많이, 그것을 우리는 ‘증발’이라고 한다. 알게 잡아가면 평이 안 좋으니까, 목사님들이 신방 다니고 외출할 때에 누구도 모르게 납치해 간다. 그렇게 잡아갔다”고 했다.
‘공산당에 체포돼 순교를 당했다는 말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물론”이라며 “그 당시 순교를 많이 했다. 또 6·25 사변 때에 국군이 다시 (반격해) 이북으로 갔지만, 압록강까지 다 못 갔다. 평안북도 절반까지밖에 못 갔다. 그런데 공산당은 국군이 오면 자기들이 죽으니까. 공산당이 철수할 때에 자기 지역 내에 있는 목사들을 다 죽이고 철수했다. 그 바람에 목사님들이 많이 순교했다”고 답했다.
이어 ‘공산당이 왜 그렇게 혹독하게 성직자들을 죽이고 탄압했나’라고 묻자 박 목사는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상이니까. 사상적으로 대치되니까 보통 미워하는 게 아니고 사상적 원수이니까 기독교를 제일 싫어했다”고 했다.
박 목사는 북한에 대해 “참 불쌍한 나라다. 그저 지금 북한의 인민들 생각하면 상상할 수가 없다. 제가 있을 때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아마 사람다운 생활을 못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순전히 공산당의 기계라 할까? 순전히 공산당에 의해 움직이지 인간다운 생활을 못할 것”이라며 “공산당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제가 있었을 때도 그랬다. 반정부에 대한 말 한 마디만 했다가 걸려들면 잡혀간다. 공산당 정보부에 잡혀가면 죽는 것”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그러니까 공산 치하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라며 “말을 하다 보면 더러 실수할 수 있다. (그런데) 실수해서 걸리면 끌려간다. 그래서 제가 있을 때도 말을 안 했다. 그저 벙어리로 산다. 말을 하다 보면 실수하니까. 그것이 공산당의 실체인데, 지금은 아마 이북 사람들이 전부 벙어리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끝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혹시나 앞으로 북한이 해방되어서 여러분들도 우리와 같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제가 바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앞으로 멀지 않은 앞날에 여러분도 우리 남한같이 해방이 되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을 기대하시고 오늘의 고생을 잘 참아 견뎌 나가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