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적인 이슈 가운데 하나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주장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주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두려워하지 말고, 위생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성경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경보장치가 울릴 때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불안해하거나 도망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우상을 숭배하고 각종 죄악을 반복적으로 저지를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경고의 나팔을 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 경고의 나팔소리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불안이나 두려움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고 순기능을 합니다. 우리가 생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전령 한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보고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모두 압살롬에게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말하였다. 서둘러서 모두 여기에서 도망가자. 머뭇거리다가는 아무도 압살롬의 손에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어서 이 곳을 떠나가자. 그가 곧 와서 우리를 따라잡으면, 우리에게도 재앙을 입히고, 이 도성도 칼로 칠 것이다."(삼하15:13-14). 하나님이 나를 지켜줄 것이니, 나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겠다고 다윗은 고집 피우지 않았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주고, 회개를 촉구하는 경보 장치 기능을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대부분의 거짓 선지자들과 이들을 따르는 다수의 백성들은 넓은 길을 걸으며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평강, 평강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아이고, 배야. 창자가 뒤틀려서 견딜 수 없구나. 아이고, 가슴이야. 심장이 몹시 뛰어서 잠자코 있을 수가 없구나. 나팔 소리가 들려오고, 전쟁의 함성이 들려온다."(렘4:19)고 느꼈습니다.
대다수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의 불안이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그의 외침을 비애국적인 처사라고 오해했습니다. 불안은 적절한 경계선(boundary)을 인식하고 지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삶에 유익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기꾼이나 이단에게 속지 않으려면, 우리는 각성하고 분별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에게 적절한 위기의식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