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 전쟁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침공한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국제전이며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동란으로 한반도가 초토화한다. 6.25전쟁 초반 승기를 잡은 북한이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차단되던 낙동강 방어선을 뚫었더라면 남한은 그대로 적화되었을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이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성공하면서 전세가 역전된다. 유엔군의 참전도 당시 안정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던 소련이 하필 불참하면서 성사된다. 이런 과정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는 것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동안 치른 이 전쟁으로 한반도는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는다. 6.25전쟁 동안 사망한 사람은 군인과 민간인 포함 남북한 모두 250만여 명에 달한다. 그 외 약 20만여 명의 전쟁 미망인, 10만여 명이 넘는 전쟁 고아, 1천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 500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한다.
6.25전쟁 동안 한국교회도 크나 큰 피해를 입는다. 수많은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순교 당하거나 끌려갔으며 교회는 불태워진다. 1952년 당시 교계가 세계교회협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남한지역 교회 파괴가 973개에 달하고 북한지역은 1천 개 이상의 교회가 파괴된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 인민군에 체포된 교역자는 1,000여명, 교전으로 희생된 신도는 3-4만 명에 달한다. 참혹한 피해와 함께 분단의 아픔을 안고 전쟁은 끝났지만 종전상태가 아닌 휴전상태로 오늘에 이른다.
6.25전쟁과 '기억 투쟁'
6.25전쟁은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우리 역사다. 그러나 반드시 잊지 않아야만 하는 비극의 역사다. 재일교포 2세 저술가 서경식은 일제 식민지배와 이후 6.25로 인한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경험한 역사 인식을 토대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 묻는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 그는 잘못된 비극의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히 기억해야만 하는 고통들이 있음을 역설한다.
진정 어제의 역사보다 오늘의 역사가 나으려면, 그리고 오늘의 역사보다 내일의 역사가 보다 희망적이려면 무자비한 학살과 처참한 전쟁으로 죽어간 무고한 이들의 고통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것을 '기억 투쟁'이라 한다. 북한 공산당의 침략으로 찢겨진 산하와 민족적 내상(內傷)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그 참화로부터 살아남은 이들과 그 후손들은 기억 투쟁에 필히 참여해야 한다.
세월과 함께 잊혀져 가는 진실을 망각하지 않고 지켜내려는 기억 투쟁은 매우 중요하다. 예루살렘에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드바셈(Yad Vashem)이 있다. 홀로코스트는 알려진 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에 의해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무참하게 희생된 대학살을 일컫는다.
야드바셈은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아들딸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사 56:5, 새번역)라는 성경 구절에서 유래한다. 히브리어 '야드'는 '기억'이나 '기념'을, '바셈'은 '이름'을 각각 뜻한다.
이 박물관에는 학살된 유대인들이 남긴 각종 유품과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마지막 출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기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나 망각은 우리를 다시 포로로 만든다." 이 문장은 예수님의 다음의 말씀으로 공명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과거는 흘러간 옛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규정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자기 정체성이 사라져 미래는 더욱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뼈아픈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6.25전쟁과 그리스도인의 역사의식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필자의 감회는 씁쓸하기만 하다. 이는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망각한 채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와 우리 사회의 거짓 평화에 익숙해져 가는 세대 때문이다. 6.25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논하는 것은 몰역사적 시각이고 나이브한 역사관이다. 한국 국민의 80% 이상이 6.25전쟁의 참상을 겪어보지 못한 전후세대다.
이런 상황 속 안보 잊은 젊은 세대가 갈수록 늘어간다. 심지어 현 정권이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6.25전쟁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망각은 폭력을 새로 불러내는 주술이고 비극적 전쟁을 재연하게 하는 시발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고 구원의 은혜를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 속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를 언제나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한다.
유대교 랍비 아브라함 헤셀(Abraham J. Heschel)은 말한다. "기억은 신앙의 근원이다. 신앙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억 없는 신앙이란 거의 상상하기 어렵다. 과거에 살아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기억하며 그 기억을 현재화하는 것이 신앙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드리는 유월절 의식를 통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기억한다. 그 기억은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로 인식하게 하는 동인(動因)이고 신앙의 요체(要諦)다. 그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년 6.25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함으로써 전쟁의 잿더미에서 우리 민족을 일으켜 세워 자유와 번영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늘 감사드려야 한다. 나아가 그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폭력과 전쟁이 여전히 난무하는 역사 무대에서 하나님 평화와 선교의 도구로 헌신해야 한다.
역사의 교훈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있는 한 6.25전쟁과 같이 공산주의에 의해 이 땅의 평화가 짓밟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생한 기억과 기념에 근거한 역사의식 있는 그리스도인만이 깨어있는 역사의 파수꾼이 될 수 있다.
이상명 박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