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 장은주 역 | 위즈덤하우스 | 216쪽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 표현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 표현
외로움은 수동태, 고독 능동태
지금은 혼자서 하는 것들이 많이 보편화되고 있다. 혼밥, 혼술, 혼숙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한다.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서는 영화 보러 못 가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도 혼자 가기는 싫어한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들과 인간관계에 얽혀 사는 것은 결국 혼자 있지 않기 위해서다.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은 좋은 것이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혼자 있는 것이 싫어 사귀지 않아도 될 사람과 사귄다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한데 가고 싶지 않은 모임에 계속가야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사람들은 왜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마 외로워질까봐 그럴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차이가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런 말을 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외로움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이기에, 고통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고독은 내가 원해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즐거운 것이다. 외로움은 외부적인 요소이고 고독은 내면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은 수동태고 고독은 능동태라고 할 수 있다. 곧 나는 혼자 있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상태가 외로움이고 내가 스스로 혼자 있고 싶어 외부와 담을 쌓고 혼자 있는 상태가 고독이다.
그래서 보통 외로움을 표현할 때는 '외로움에 시달린다. 힘들다'고 표현을 하고 고독을 표현할 때는 '고독을 씹는다. 고독을 즐긴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외로움은 시달리나, 고독 즐긴다
외로움, 차단당하는 수동적 감정
고독,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떠남
채운이 쓴 <철학을 담은 그림>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고독해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 필요합니다. 외로움은 타인으로부터 차단당하는 데서 느껴지는 수동적인 감정이지만, 고독은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떠남'입니다.
무엇으로부터 떠나는 것일까요? 자기 시대의 규준으로부터, 타인의 평가로부터,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주위의 소란스러움, 즉 자신에 대한 자타의 규정으로부터 떠나 자신에게 내재한 '미지의 영역'을 거니는 것, 그것이 바로 고독입니다.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관계이기 때문에, 분명 우리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우정도 연애도 모임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혼자만의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고독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나의 삶을 조율하는 시간이다. 가수이자 배우인 김창완 씨가 <안녕, 나의 모든 하루>라는 책에서 조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악기는 며칠만 그냥 두면 소리가 뒤틀어집니다. 튜닝이 흐트러지지요. 그럼 다시 조율을 해줘야 합니다. 오늘도 기타를 매만지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참 일상을 조율 없이 사는구나, 하구요.
조율이 안 된 기타를 쳐도 그냥저냥 소리야 나지요. 하지만 투명하고 맑은 소리는 아닙니다. 울림이 느껴지지 않고 감동이 전해지지 않아요. 일상도 악기와 같습니다. 튜닝이 흐트러지지 않게 조율을 해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거지요."
혼자 있는 시간, 자신 조율할 시간
가장 아름다운 소리 내기 위한 준비
누구에게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
꿈 이루고 목표 향해 나아가기 위해
악기에도 조율이 필요하듯, 우리의 삶 가운데 조율이 필요하다. 자신을 조율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이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에 대해 쓴 책이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다.
이 책의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 메이지 대학교 교수이다. 그는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이면서 일본과 한국의 300만 독자를 사로잡았다.
사이토 다카시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이 혼자 있는 시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입에 실패한 열여덟 살부터 직장을 얻은 서른두 살까지 철저히 혼자였다. 친구도, 직업도 없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공부에 몰입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쌓아온 내공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다.
그는 꿈을 이루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누구에게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혼자 있는 시간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10년간의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자', '자신을 치유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혹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키우는 시간을 좀 더 갖자고 말하고 싶다.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지적인 생활이야말로 누구나 경험해야만 하는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다."
저자는 자신이 사교성이 없었기 때문에 인생의 상당 부분을 혼자서 보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목표한 것을 이루려면 단독자가 되어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저자는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여기서 단독자(單獨者)란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 개념을 가지고 온 것이다. 현대인은 자신의 자유와 주체성을 버리고 집단 속에 묻혀 자기를 잃어간다. 그 전체, 즉 집단의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를 키에르케고르는 '단독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혼자 있는 시간과 그 시간에 단독자로서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독은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고독과 사귀고 그 시간을 잘 활용할 때 내가 단단해진다. 기회가 열려진다. 인생이 달라진다. 기대를 현실로 바꿀 수 있다.
그리스도인, 혼자만의 시간 필요해
1. 하나님께 홀로 나아가기 위해
2. 생각하기 위해
3. 자기 성장을 위해
그리스도인에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홀로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던 것처럼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께로 홀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함께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고 그 기도 가운데 응답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과 나만이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둘째,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김은주씨가 쓴 '1cm art'에는 '21세기 음모론'이라는 재미있는 글이 있다. "거실에는 TV가 있다. 차 안에는 DMB가 있다. 가장 은밀한 장소,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스마트폰이 있고 비행기 좌석 앞에는 어김없이 스크린이 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는 늘 켜져 있는 모니터가 있다.
이쯤 하면 음모론이 의심되지 않는가? 인간에게 사색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외계인의 음모론. 반대로 말하자면 사색하는 인간은 적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일지 모른다."
이 글을 보면 사색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 '외계인의 음모론'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필자는 '외계인의 음모론'이 아니라 '사단의 음모론'이라고 표현을 하고 싶다.
자신을 한 번 돌아보라. 하루의 시간동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시간 말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 없이 살아가게 만든다. 세상이 돌아가는 데로 되는대로 그냥 살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셋째, 자기 성장을 위해서이다. 자기성장을 위해서는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어내야 한다. 공부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고독 속에서 혼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집을 푸는 시간도, 책을 읽는 시간도 혼자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다. 홀로 자기 성장을 위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낡은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다. 인생의 힘이 필요할 때 그런 새 옷을 갈아입음으로써 다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순의 나이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느긋하게 걸어라>는 순례기를 펴낸 조이스 럽 수녀는 홀로 있으려고 노력하는 시기를 '인생의 자궁기'라고 했다. 사람의 생명이 어머니의 어둡고 밀폐된 자궁 속에서 홀로 형성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 또한 진정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혼자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설 수 있다
부모, 자녀도 홀로 서야 아름다운 가정
교회, 직분자들 제대로 홀로 서야 성숙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혼자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 숲에 가보면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홀로 서 있으면서 동시에 함께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무가 각자 홀로서기를 하지 않고 있으면 아름다운 숲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홀로서기를 할 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는 목사로서 직분자는 직분자로서 성도는 성도로서 홀로서기를 제대로 할 때 교회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저: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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