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
로저 스크루턴 | 박연수 역 | 도움북스 | 486쪽

 

 

 

이념 대립이 날로 심해져 가는 대한민국, 기독교인들 또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만은 없다. 허나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해 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노라면 대부분 좌파 성향의 서적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균형 잡힌 공부를 위한 길은 없는 걸까?

이 같은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는 서적이 최근 한글로 번역·출간됐다. 바로 '에드먼드 버크 이후 가장 뛰어난 영국 보수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는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 박사의 책 <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

현대정치사상의 전당을 메우는 E.P. 톰슨, 로널드 드워킨, 위르겐 하버마스, 죄르지 루카치, 장 폴 사르트르,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의 걸출한 사상가들. 이제 이들은 지성의 보루에 깊숙이 안착되어 칭송만 받고 있지만, 스크루턴은 이들의 학문적 위선과 도덕적 방종을 폭로한다.

유려하고 위트 넘치는 문장력으로 타겟의 허를 찌르는 스크루턴의 글은 시종일관 명쾌하다. 뉴레프트 사상이 전세계 고등교육기관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배포되는 오늘날, 총체적 안목을 지닌 철학자가 자기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작성한 이 고발장은 이 시대 철학서의 백미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다루는 사상가들을 '좌익'이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우선, 내가 다루는 사상가들 자신이 그 용어로 스스로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세계에 대한 어떤 영속적인 입장을 제시하기 때문"이라며 "내가 다루는 인물들 중에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번성하게 된 신좌파와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 또 다른 이들은 사회는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며 사회의 재화를 분배할 권한 또한 국가에게 있다고 말하는 전후 정치 사상의 광범위한 토대를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저 스크루턴.
▲로저 스크루턴. ⓒ유튜브 영상 캡처

그는 또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지닌 모순적 본질은 곧 그런 유토피아를 실현하려고 할 때 동원되는 폭력성의 원인이 된다. 즉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도록 강요하려면 무한한 힘이 요구된다"며 "이러한 유토피아의 기억은 1960년대의 신좌파 사상가들과, 그들의 기획을 도입한 미국의 좌파 자유주의자들을 무겁게 짓눌렀다. 더 이상 마르크스를 만족시켰던 공허한 추측을 도피처로 삼는 것이 불가능해진 실정이었다. 역사가 사회주의로 향한다는 것 혹은 향해야 한다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현실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부가 없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프랑스 대혁명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고인의 재판에서 제3자가 없을 경우, 증거를 면밀히 살피는 사람이 없을 경우, 당사자들 사이를 중재하며 사실을 공정하게 검토할 사람이 없을 경우, '정의'는 모든 무기가 한쪽에만 몰려 있는 '사활적' 투쟁이 되어버린다"며 "모스크바 재판과 프랑스 대혁명의 혁명 재판소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 책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에 대해 "좌파는 잘못된 것에 집중하고, 그것에 대항해 결집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사랑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해 버리면, 또 우리가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공동체도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돼 버린다"며 "전형적 우파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이 상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스크루턴은 1944년생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런던 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에서 미학 교수로 20년간 가르쳤으며, 이후 보스턴대학교 초빙교수, 미국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워싱턴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 [영국미학저널]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그 외 케임브리지대학, 프린스턴대학, 스탠퍼드대학, 루벵대학 등 세계 각국 명문교육기관에 초빙된 바 있다. 현재는 버킹엄대학교 인문학 연구소(THE HUMANITIES RESEARCH INSTITUTE)에서 미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프랑스 68혁명을 직접 목격하면서, 당시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반문화·반이성 운동에 맞서 활발한 사회운동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9-1989년에는 소련 통제하의 동유럽에서 반체제 대학들의 지하학술네트워크 설립을 후원했다. 이 때문에 한때 동유럽에서 억류·추방당했으나 1998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체코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철학, 미학, 정치학에 관한 4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주요 저서로는 <현대철학강의>, <보수주의의 의미>, <예술과 상상>, <긍정의 오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