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유덕종 박사이야기입니다. 유박사는 경북의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의사였습니다. 1991년에 창설된 한국국제 협력단(KOICA)봉사요원으로 1992년에 우간다로 건너간 유덕종 박사는 내과 전문의입니다.
서른셋 한창나이에 건너간 유덕종 선교사는 2년마다 계약을 연장하면서 23년간 우간다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우간다 국립 후송병원인 물라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했었고, 동아프리카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 받는 마케레레 대학교 의과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합니다.
한국에서 의사로 살면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덕종 선교사도 간단히 봉사하고 돌아오리라 마음을 먹고 한국국제 협력단에 지원하여 우간다로 떠났습니다. 군의관 제대를 하고, 세 살과 두 살의 딸과 셋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두고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지만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것은 젊은 시절 그의 꿈이었습니다.
우간다 생활 8개월 만에 가족이 합류하여 나름대로 행복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너무 열악한 의료 환경을 보면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고 '나 혼자 발버둥 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고 계약기간만 봉사하고 귀국하기로 맘을 먹습니다. 귀국 후의 생활도 준비하며 한국에서 의사로 살아갈 꿈을 온 가족과 함께 꾸었습니다.
그런데 계약 만료를 앞두고 귀국을 준비하던 어느 날 큰딸이 뇌수막염을 앓게 됩니다. 변변한 의료 시설도, 약품도 없는 오지에서 딸이 죽어 갑니다. 아빠가 의사지만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경련을 일으키는 딸이 숨도 쉬지 못하는데 의사인 아빠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기마저 끊어진 방에서 촛불을 켜고 신음하는 딸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던 유덕종 박사에게 "죽어가는 네 딸은 귀하게 여기면서 죽어가는 이 나라 사람들은 버리고 가느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집니다.
이 음성을 들으며 유덕종 선교사는 우간다에서 선교사로 살기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시작된 20여 년의 아프리카 생활! 유덕종 선교사는 아프리카에도 한국에도 집 한 채가 없답니다. 의사로 수십 년을 살았는데 집 한 채도 없지만 정작 본인은 "목표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는 2002년부터 병원을 짓고 있습니다. 시간당 9000원짜리 의대 강사로 번 돈 마저 아프리카 병원건립에 쏟아 부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수고를 아무도 몰라줍니다. 한국정부는 물론이고 우간다 정부도 몰라줍니다. 우간다 정부로부터는 2000년에 받은 '내과 분야 최고 의사상'을 받은 것이 전부랍니다.
아프리카로 간다고 할 때, 또 아프리카에 남는다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미친놈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유덕종 교수는 우간다 의사들의 스승입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크리스천이 되었던 그는 아프리카 의료 선교 활동을 결심하게 되었고 우간다 생활 도중에 유 사무엘로 개명하여 온전한 선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유 사무엘(덕종) 선교사는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제자들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함께 공부한 제자들이 부패한 사회와 문화를 변화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이웃을 위해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하는 유 사무엘 선교사는 의술의 스승이 누리는 기쁨을 넘어 영적 스승의 기쁨을 누리는 진정한 선교사입니다.
유 사무엘 선교사가 얼마 전에 책을 냈습니다. 홍성사에서 발간한 '우간다에서 23년'입니다. 이 책에서 유 선교사는 일생 나눔의 삶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내가 그들을 치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을 통해 내가 치유 받았어요. 낮아짐에 행복이 있습니다." 라고 자신의 행복을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눔이 행복입니다. 그리고 나눔이 성공입니다. 나눈 삶이 진정한 자신의 삶입니다.
행복 설계사 월드쉐어 USA 대표 강태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