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모니카 프리웨이에서 빠져나와 웨스턴 거리를 지나다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마가교회)라는 간판이 보인다. LA한인타운에 거주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았을 간판이다.그리고 누군가는 그 이름에 이끌려 그 교회에 발을 내딛기도 했을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니,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들어 보았을, 유명한 구절인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선포하신 8가지 복 중 첫번째 복이다. 팔복 중 첫번째 복인 만큼, 마음의 가난은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는 지점, 우리의 존재적 가난이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지는 지점이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책을 내며 유명세를 타게 되면 영적인 민감성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는 마가교회 채동선 전도사는 “존재적 가난이 피조된 자의 실존”이라며, 마가교회를 “본인의 존재적 가난을 환경이나 삶을 통해서 철저히 경험한 자들,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보는 자들”의 교회라고 소개했다.
"창1장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가득하다고 했는데, 그것이 나의, 피조된 자의 실존임을 깨닫게 되었다. 에덴동산에서 실과를 먹는 사람이 3인칭이 아니라 내 자신임을 깨달았다. 구원은 이 존재적 가난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 교회는 교인수가 500명이 넘지만, 건물을 구입하지 않고 렌트해서 사용하며, 노숙자를 위한 쉼터와 미자립교회, 장애인, 합창단 등 여러 단체에 공간을 무료로 개방해 왔다.담임 목사도, 당회 제직회도 없이 채 전도사는 교인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채동선 전도사, 그는 총신에서 헌법과 교회사를 가르치며 여러 교회 분쟁을 중재한 채기은 목사(기독신보 주필)의 손자이며, 일제 치하 신사참배를 거부한 채정민 목사의 증손이지만 어린시절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여러 교회를 다니며 분쟁을 목격한 탓에,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또 한번은, 젊은 순경이 자기 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구타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교회와 사회를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 온 그는 “보이는 현상 이면의 숨어 있는 공식을 만들어 내며, 현상을 기준으로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는”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현상의 이면을 탐구하는 물리학이 성경의 특성, 글자 뒤에 있는 뜻, 진리를 발견하는, 망언득지(忘言得旨), 말을 버리고 뜻을 얻는 것"과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대 초반 사업 실패를 겪으며 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알콜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마약에도 손을 댔다. 몇차례 자살시도 후, 자기 자신이 “흑암, 혼돈, 사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철저한 자기 부정의 지점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 66:2) 말씀을 따라 교회를 개척하게 됐다.
"깨어진 사람, 부서진 사람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시작했다. 모든 사람은 가난의 지점, 부족의 지점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이 오셔야 한다. 죄인의 자리는 예수가 찾아오는 자리이고, 흑암이 절대로 빛을 찾아 갈 수 없고 죄인이 하나님을 찾아 갈 수 없다. 공허에는 충만이 찾아 온다. 베데스다 병자도 연못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구원 받았다. 그것이 마가교회다. 내가 흑암이고 혼돈이며 사망인 것을 보는 지점에서 우리 구원이 출발한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고 조용히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목회를 하려 했는데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처음에 마가교회를 찾아온 이들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아내가 안경점을 경영하는데 매상을 전부 교회를 위해 사용했고 결국 집까지 뺏겼다. 다행히 다시 집을 찾은 후에는 교인들과 같이 살았다.
그러다 2017년 6월 이 교회는, 한인타운 4가와 노르만디에 위치한 주차공간 부지에 부동산 업체가 주상복합건물 건설을 추진하면서,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부지가 철거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상황조차도 채 전도사는 하나님이 진짜 일하시는 것을 보는 '잠시 멈춤'의 시간으로 해석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이 있다. 달리는 말에서는 산이 안보인다. 말에게 물을 주려고 멈춰 섰을 때 비로소 산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목회를 하다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간과한다. 우리가 잠시 멈출 때, 진짜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교회도 이런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 장소를 찾을 때까지 안식년을 갖자’고 했다. 가정예배도 드리고 소그룹으로 예배를 드리며 9개월 간 안식년을 갖고, 새 장소로 들어갔을 때, 2001년 6월 처음 마가교회를 개척했을 때와 같은 장소에서 17년만에 예배를 드리게 됐다."
7번째 들어간, 베벌리에 있던 교회는 3층 전체를 렌트해서 몽골 교회, 히스패닉교회, 선교단체, 문화예술 공간. 소극장. 영어 시민권 가르치는 곳, 장애 선교회, 무료 한의사 진료소 등 20개 가까이 되는 단체들에게 4년간 무료로 제공하며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커뮤니티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새로운 교회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도 마가교회는 오전 8시 반, 10시, 11시 반에 예배를 드리고, 2시부터는 히스패닉. 저녁 7시에는 몽골교회에서 같이 쓰고 있다. 늘 재정이 어렵지만 한인교회가 재정을 담당하고 뒤 늦게 출발한 다른 민족의 교회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는 교회에서의 삶과 평소의 삶이 달라서는 안된다며, 평소의 삶을 교회에 그대로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교회에서의 삶과 가정에서의 삶이 다르다면 평소의 삶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설교자가 '거룩하게 살자' 이런 얘기 하지 말고 자기 얘기를 해야한다. 나는 성도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성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더라. 목회자와 교인들은 자기 실존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교회에 와서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지 말고 가정의 모습도 그대로 가져와서 보여줘야 한다."
"정직한 삶이 어디이냐? 교회도 가정을 그대로 가져와서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 찾아오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 죄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하나님이 오신다. 악은 우리고 선은 하나님이다. 악은 선의 부재이며 흑암은 빛의 부재이다. 없는 자, 가난한 자가 모이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가난한 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올 수 밖에 없다."
채 전도사는 "선과 악을 이원론이 아니라 부재로 본다. 악과 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악의 세력과 싸우는 게 아니라 악은 선이 필요한 존재"라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성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 전도사는 성화에 대해서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 받은 자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화는 속이 변하는 것이며, 타인을 향하던 손가락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것,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그러니 여인은 죄 없는 자가 된 게 아니라 용서 받은 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죄 없는 자가 되는 게 아니라 용서 받은 자로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브라함이 '이 성에 의인이 10명 있다면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을 다르게 접근한다. 그에 따르면, "'의인이 한 명도 없을지라도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어야 한다는 것.
그가 자녀를 갖지 않은 것은 사업실패로 인한 좌절과 절망, 이를 극복한 후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한 서원기도 때문이다.
"사업을 경영하면서 너무 힘들었다가 그것을 극복하고 신학교에 들어갈 때 아이를 안 갖는 대신에 목회를 잘 하게 해달라고 서원기도를 했다. 이후 할아버지의 임종을 겪으며 자녀를 갖고 싶어져 아이를 가졌는데 3개월 후 아내가 하혈을 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자녀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교회는 이러 이러 해야 한다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교회는 나쁜 사람들이 와야 한다. ‘내가 저 놈 때문에 교회 안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고 말하는 채 전도사는 마지막으로 목회에 대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교회 성장, 발전으로 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 마가교회는 “이 세상에서 내 삶을 통해 ‘ 나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오직 ‘예수의 흔적’만 남기를 원하는 교회”이며,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