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때 제임스 맥도날드 목사는 군목으로 출전하였다가 독일군에게 붙잡혀 포로생활을 한 분입니다. 그가 포로생활에서 겪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합니다. 포로생활이 길어지면서 군인들이 힘들어하기 시작하더니 스스로 자해하는 사람, 자살하는 사람, 도망 가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가 하면 물건을 훔치고 싸우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포로가 부서진 라디오를 조립해서 영국의 BBC 방송을 들었답니다. 맥도날드 목사가 밤에 잠을 자던 어느 날 그는 조용히 깨워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을 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은 조용히 포로들 사이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포로들이 더 이상 자해를 하지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고 물건을 훔치는 일이나 싸우는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포로들끼리 만날 때마다 하이파이를 하면서 독일군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수용소 안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답니다. 그는 포로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희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틱바> 또는 <야할>이라고 합니다. 틱바의 원래의 의미는 ‘밧줄’입니다. 사람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전래 동화 중에 호랑이가 잡아먹으려 하자 어린 오누이가 “밧줄을 내려주세요”라고 하늘에 비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야할은 몸부림치는 희망을 말합니다. 이는 도저히 희망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뭔가를 붙잡고 우격다짐으로 희망을 주장하면서 집요하게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우긴다는 뜻입니다. 희망은 원래 그런 의미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박국서와 로마서에 나오는 이 말씀은 의인은 현실이 어렵고 기가 막힌 처지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믿음으로 아직 희망이 있음을 주장하고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잠언의 이 말씀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아예 의인은 7전8기 한다고 합니다.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악인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만큼 희망의 동아줄을 꼭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말라는 라틴어 경구가 우리 모든 분들의 마음에 늘 있기를 기도합니다.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