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년 전 4월 12일, 미얀마에 최초로 복음을 전해준 아도니람 저드슨이라는 미국 선교사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벵골만에 묻혔다.
국제기독연대(ICC)에 따르면, 현지어로 '선생'이라는 뜻의 사야(Saya)로 불린 그는 미얀마의 선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초기 미국 공화당이 영국 왕권으로부터 자립한 지 5년이 지난 1788년 8월 9일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아도니람의 아버지는 회중교회 목사였고, 말든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를 섬겼다. 아도니람은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비범했다. 3살 때 책을 읽을 줄 알았고, 아버지는 어느 날 그가 성경 한 장 전체를 읽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을 때 그는 삶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의 비참함을 겪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시골 여인숙에 머무르고 있을 때 옆방의 한 남자가 죽음으 위기에 처해 누워있었다. 그는 그의 신음소리를 밤새 들으며 깨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옆방 남자가 대학 시절 그의 불신자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그 잘나가던 친구가 죽음 앞에서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깊은 절망에 쌓였다. 6주 후 아도니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되찾았다.
국제선교이사회(International Mission Board)는 아도니람 선교사가 거의 40년 가량을 미얀마에서 보냈다고 전했다. 사역 기간 동안 수 백명의 미얀마인들과 카렌 족 출신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갖도록 도왔다.
또 성경과 신앙 서적들을 2개의 언어로 번역하고, 여러 책들을 저술하고, 다양한 신학적인 주제를 다뤘다. 또 미국 남침례회가 선교 사명을 위해 연합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그는 지속적으로 아픔, 고통, 사망에 직면하는 등 많은 고난과 환난을 겪었다. 아내와 3명의 자녀들을 질병으로 먼저 떠나 보내기도 했다. 또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 때 간첩으로 오해받아 1년 이상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석방된 후에는 미얀마와 영국 사이의 평화협정을 위한 번역가로 활동했다. 그가 번역한 평화조약은 영국-미얀마 전쟁의 종식에 이바지했다.
미얀마에서의 오랜 사역을 통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었다. 오늘날까지 침례교단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교단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약 100만 명의 성도들이 있다.
그가 번역한 작품들도 기독교 공동체와 미얀마인들을 유익하게 하는 유산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