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지난 1980년 2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이날이 포함된 주를 '전국 여성 역사 주간'(National Women's History Week)로 선언했고, 1987년 의회에서 이를 공식 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기리고 있다.
현재까지도 여성들은 교회 역사 안에서 지속적이고 다양한 헌신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여성 기독교인 7명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잔 다르크 (Joan of Arc)
▲잔 다르크. ⓒPublic Domain |
1912년 태어난 잔 다르크는 유명한 프랑스인 여성이다. 천사와 같은 그녀의 등장으로 사기를 얻은 프랑스군은 영국 군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결국 프랑스 샤를 7세가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그녀는 어릴 때, 과거의 성인들로부터 영국에 대항하여 프랑스군을 일으키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직접 전장에 나가 전쟁을 이끌기도 했다.
1429년부터 1430년까지 그녀는 영국군과 동맹군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부르군트인들에게 잡힌 뒤 영국으로 팔려갔다가 19세 나이로 처형 당했다.
2. 수산나 웨슬리(Susanna Wesley)
▲수산나 웨슬리. ⓒLibrary of Congress |
수산나 웨슬리는 목회자의 아내이자, 18세기 감리교 운동을 일으킨 존과 찰스 웨슬리 형제의 어머니였다.
단 한 차례의 공적인 직책이나 사역을 맡지 않았던 그녀이지만 '감리교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웨슬리 형제의 영적인 습관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연합감리교 내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알프레드 T. 데이 3세 목사는 2016년 영상에서 수산나 웨슬리의 역사에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존과 찰스 형제는 그녀의 아들들이었고, 그녀는 그들의 교육과 영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기른 두 아들로 인해 17~18세기에 이뤄진 변화들이 오늘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3. 프랜시스 제인 크로스비(Francis Jane Crosby)
▲프랜시스 제인 크로스비. ⓒPublic Domain |
1920년에 태어난 프랜시스 제인 크로스비는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로 잘 알려져 있다. 각막염에 걸렸던 그녀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어린 나이에 실명을 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 많은 찬송가를 만들어냈다. 당시 그녀가 작곡한 8,000개의 곡들은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가운데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크 큰일을 행하신', '예수 나를 위하여', '인애하신 구세주여' 등 많은 곡들이 오늘날까지 불려지고 있다.
찬송가 작자였을 뿐 아니라 시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1944년 'A Blind Girl and Other Poems'라는 제목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4.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해리엇 터브먼. ⓒLibrary of Congress |
해리엇 터브먼은 미국 메릴랜드 주 도체스터 카운티의 한 농장에서 노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1950년부터 1860년까지 300여 명이 넘는 남부의 흑인들을 북부로 탈출시키는 일을 했다.
도망 노예 송환법이 미국에서 제정된 때에는, 도망친 노예들을 캐나다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동시에 그들에게 직업을 찾아주기도 했다. 흑인들에게 그녀는 모세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40세 전후의 나이로 요리사이자 간호사로, 무장 정찰병이자 스파이로 활약하기도 했다. 또 전쟁에서 탐험대를 이끈 첫 여성이 되어 700명의 노예를 구출하기도 한다.
또 평생에 걸쳐 모은 돈으로 1908년 '해리엇 터브먼의 집'을 세워 해방된 흑인들의 안정된 정착과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었다.
5.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
▲캐서린 부스. ⓒPublic Domain |
그녀는 남편 윌리엄 부스를 도와 1965년 영국 런던에서 구세군을 창립한다. 크리스천 미션으로 불렸던 이 단체는 도시에서 가장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구제 사업으로 유명해졌다.
캐서린은 어릴 때부터 금주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었고, 주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열정적인 설교자로 명성을 얻었다.
구세군의 창설 과정에서 캐서린 부스의 역할을 연구한 스웨덴의 로라 페트라 박사는 "구세군의 창립자가 윌리엄 부스인지 캐서린 부스인지 논한다는 것은 마치 아기가 아버지로부터 생긴 것인지 어머니로부터 생긴 것인지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구세군은 한 원동력이 아닌 두 원동력에 의하여 발동이 걸렸던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6. 로티 문(Lottie Moon)
▲로티 문. ⓒWikimedia Commons |
로티 문은 1840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넓은 땅과 많은 노예를 가진 부유한 대농장주의 딸로 태어났다.
로티는 1858년 전도집회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앨버말 여자대학에서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를 주도하는 영향력 있는 신앙인이 되었다. 그녀는 대학을 1등으로 졸업하고 여러 여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그녀는 침례교 선교본부에 중국 선교사로 지원했고, 1873년 교단에서 파송한 최초의 싱글 선교사로 선교사들이 중국에 세운 학교의 선교사로 가게 됐다.
2015년 윤리와 문화 블로그는 "그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과 사회적 지위, 사랑하는 가족들을 미국에 두고 불편함과 끝없이 치열한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를 증언해 수 많은 이들에게 영웅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7. 도로시 데이(Dorothy Day)
▲도로시 데이. ⓒWikimedia Commons |
1897년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일리노이 대학교 시절 급진적인 사회사상이 담긴 책들을 읽으며 미국 사회당에 입당하여 활동했다. 졸업 후 사회주의 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전쟁 중인 세상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위해 브룩클린 킹스 카운티 병원에서 간호 실습생으로 활동하며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본다. 1년 만에 다시 신문기자로 복귀한 그녀는 낙태를 경험하게 되고, 이에 대한 트라우마로 점차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영적 스승이자 평생 동료인 피터 모린을 만나 만나 가톨릭 노동 운동이라는 노동자 신문과'환대의 집'이라는 홈리스 시설을 운영했다
반핵, 노동운동, 반전운동, 이권운동 등 평생동안 투옥을 반복하며, KKK 등의 과격단체의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봉사와 사회활동을 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