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첫 설교집이라면 기독교 핵심 담긴 ‘로마서’ 고를 것
진리는 변하면 안 돼, 변하면 유행일 뿐… 뿌리로 돌아가야
한 번 쓴 설교 다시 돌아보지 않아… 오늘의 은혜로 먹인다
설교란? 성경은 이렇게 말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로마서 강해를 통해 교회는 부흥했고, 바르고 확실한 믿음 위에 선 성도들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로마서를 듣기 위해 주일마다 구름떼처럼 몰려왔던 성도들을 기억한다. 오늘날 세상은 쉽고 편한 것을 삶의 목적 삼아 추구하고 따른다. 그런 위안을 받기 위해 교회에 오기도 하는데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만으로 기뻐했다.”
1988년 서울 목동에서 7명의 성도와 함께 시작한 벧엘교회는 현재 1만여명의 성도가 출석하고 있다. 일산 벧엘교회에서 지난 30년간 강해설교를 통해 성도들이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도록 끊임없이 성경 본문과 씨름해온 박광석 목사는 30년만에 첫 강해 설교집 <복음의 언어, 로마서>를 펴냈다. <성경 66권 공부> 발간 이후 4년만에 박광석 목사를 다시 만났다.
-첫 강해서를 발간하셨습니다. 그 동안 설교집이나 강해서를 내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우선 제가 설교했던 것을 책으로 내려면 풀어진 것을 축약시키든 변경하든 다시 정리를 해야 하는데, 1주일간 너무 바쁘게 지냅니다. 많이 돌아다니는 건 아니지만, 설교를 위해 묵상하고 책을 보고 연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을 감당하면서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4년 전 <성경 66권 공부> 개정판을 냈을 때도 완전히 내용을 다듬었는데, 3년이 꼬박 걸렸습니다. 휴가를 가면 아침부터 그것만 해서, 목디스크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야 가능하구나’ 하고 절반쯤 포기했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되어서 이번에 책을 내게 됐습니다. 그러면 어떤 책을 먼저 낼 것인가 생각했을 때, ‘로마서’가 떠올랐습니다.”
-많은 설교 본문 가운데, 왜 로마서였나요.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독교를 말하는 가장 중심된 성경이 무엇인가 하면 무엇을 언급하겠습니까. 물론 모든 성경이 다 중요하지만, 교리 등을 가장 잘 정리해 놓은 성경 딱 한 권을 이야기하라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워낙 심혈을 기울여 썼기에,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의 본질이자 기본입니다. 이것부터 먼저 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강해서들 중 가장 많이 나온 책이 로마서일 것입니다. 주석서나 해설서, 연구서 등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로마서에 관심을 기울일까요. 그만큼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안 다뤄지면, 다른 것도 제대로 다룰 수 없습니다. 어떤 목회자라도 설교집을 내고 싶다면 로마서부터 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서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어거스틴이나 크리소스톰, 루터와 칼빈 등도 모두 로마서를 통해 큰 감명과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만큼 로마서가 핵심입니다.
진리는 변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변한다면, 진리가 아니고 유행일 뿐입니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똑같습니다. 왜 20세기 철학자들이 ‘철학은 이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끝났다. 나머지는 가지치기일 뿐’이라고 하겠습니까. 진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가지치기라는 것이 필요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지치기를 하다 보면 뿌리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우리가 뿌리로 돌아가서, 다시 진리를 확실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지, 발전된 유행만 쫓아가다간 자칫 진리를 놓친 채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강해를 여러 번 하셨을텐데, 하실 때마다 강조점이 달랐나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경 한 장 한 구절을 조금씩 조금씩 설교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는 방식입니다. 주일 낮에도, 저녁에도, 수요일에도 다 강해설교를 합니다. 색깔은 조금씩 다릅니다. 주일 낮 설교가 조금 더 함축적이라면, 수요일 설교에서는 좀 더 적용을 넓히는 정도로 다릅니다. 그래도 제 스타일을 벗어나진 않겠지요.
사도행전도 세 번째 하고 있고, 로마서도 세 차례 설교했습니다. 창세기도 개척 이래 30여년간 세 번 했고,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두 번씩은 다 설교한 것 같습니다. 저는 성경 66권을 주신 이유가 그 안에 모든 메시지가 다 있으니 여기서 잘 잡아 골고루 하라는 뜻으로 봤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을 어떻게 잘 섬기고,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동행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인가에 있습니다. 목사님들마다 좀 더 본질적인 신앙으로 인도하는 방법이 다를 것입니다. 제가 그랬을 뿐, 저처럼 모든 본문을 다 다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 설교의 강조점과 차이점을 물으셨는데, 저는 예전 것을 보지 않고 준비합니다. 한 번 쓴 것은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절대 이전 것을 참고하지 않고, 남의 것은 더더욱 보지 않습니다. 물론 공통된 지식이 있는 것은 당연히 비슷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개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신 분들에게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헌신된 자로서,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성도들을 먹인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목사의 일은 세상적으로 보면 아주 고달픈 것이지만, 아주 영광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개가 기묘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소명’이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설교만으로 많은 성도들과 공동체를 이끄시는데, 그런 차원에서의 설교 준비나 염두에 두시는 요소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시면서도, 설교에서는 성경을 보여주기보다 많은 예화들을 통해 본인이 말하려는 것을 인간적으로 보여주시는 걸 봤습니다.
저는 그게 싫었는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뒤 ‘성경이라도 제대로 보여주자, 그래서 성도들이 그 성경을 보고 스스로 자기 삶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살도록 가이드 역할을 하자’ 하는 생각으로 강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놓고 이야기할 때 교회 와서 봉사하고 이런 저런 일에 참여하는 것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 와서는 정말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듣고, 세상에 나가 그것으로 삶에서 힘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하면서, 스스로 신앙생활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허수를 없애야 합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제 바람은 그것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인위적인 면이 많고, 거기서 얽히고설키는 인간의 모습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요즘 성도들은 제목만 봐도 무슨 말씀을 할지 안다는데, 몇 번 같은 본문을 들은 성도님들의 반응이 어떤가요.
“영화 제목을 보면, 영화 내용이 예상되시나요? 설교 제목과 내용은 무관합니다. 제목은 어디까지나 제목일 뿐입니다. (제목에 주제가 나와있는) 논문 제목이 아닙니다.
목사님이나 오래된 성도님들 생각은 제목만 보면 무슨 말씀 할지 다 안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라면, 제목을 보고 ‘오늘은 얼마나 휘황찬란한 세계가 펼쳐질까’라고 생각해야 정상 아닐까요.
-한 번의 설교와 예배로 그것이 가능한가요.
“수요예배까지 드리면 두 번입니다(웃음). 우리 교회 성도들 한 번 정도 예배 드리는 것 같다. 수요일 오전예배에도 많이 나오십니다. 수요일 저녁까지 2부로 예배를 드리는데, 그러려면 저는 성격상 수요일 아침부터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 합니다. 주말도 그러다 보니, 1주일 내내 묶이게 됩니다.
수요예배는 화요일에 준비해 수요일에 설교하고, 수요일 오후부터 목요일까지 글을 쓰거나 약간의 여유를 가진 뒤 목요일 오후부터는 주일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수요일은 오전예배를 택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의 훈련을 해야 하지 않냐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해야지, 더 이상 얽어매는 것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너무 성도들을 방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뜻은 아닙니다.
‘먼저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가장 간단히 하자면 설교는 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알아서 ‘그 말씀이 맞구나. 그렇게 해야겠구나’ 결심하고, 알아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성경, 다른 하나는 적용입니다.”
-예화가 많지 않고, 있어도 주로 자신의 경험을 예로 사용하셨습니다.
“예화를 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칙이라는 말은, 예화를 찾으려고 돌아다니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반짝 하는 예화를 찾으려 본문은 놔두고 돌아다닙니다. 돌아다니다 갈 데가 없으면 아무 데나 가서 주워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화를 안 쓰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본문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화가 생기면 사용합니다. 여기서는 적용으로 이어질 때 ‘내가 해 보니까 이렇더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자랑은 없고, 주로 쓰라렸던 경험들이 공개됩니다(웃음). 어쨌든 성도님들이 성경대로 살게 하는 것이 바라는 바입니다.”
-듣다 보니, 목사님께서는 설교를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설교는 논문도, 에세이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인가요.
“그 두 가지를 합쳐놓은 것입니다. 도자기 같은 거라고 할까요? 그림도 그렇고, 모든 게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서재 벽을 보니 책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 그림도, 십자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한 번 걸어볼까 알아봤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했습니다. 우연히 어디선가 명화 카피본 파는 곳을 봤습니다. 13,000원이면 사더라고요(웃음). 사 와서 화가를 살펴보니 3점 다 고흐 작품이었습니다. 고흐가 누군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어떻게 다 그렇게 골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프랑스에 갈 일이 있었는데, 프로방스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밀레가 있었던 방으로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방에 있던 작품들이 모두 밀레의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고흐가 밀레 그림을 스승 삼아서 따라 그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그림을 비교해 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그렸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