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고통의 문제는 우리의 삶과 직결됩니다. 우리 인생은 고통의 씨줄과 날줄로 역어져 갑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장이요 현실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고통의 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욱이 저명한 기독교 변증학자인 C. S 루이스(Lewis)의 명저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에서 제기한 질문처럼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왜 세상에 고통을 존재하게 하시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늘 문제를 제기하고, 때로는 의문을 제기하며 살아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을 가까이 해 보면, 그 누구도 예외없이 고통과 고난의 화마(火魔)가 남긴 아픔과 상처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고난의 현장과 가시밭에서 땅이 꺼질 듯 긴 한 숨을 쉬며, 끊임없는 눈물 흘리며 고난의 폭풍 속에 휘말려있는 우리의 이웃을 보기도 합니다.
직면한 고통의 현장 모습들
인생의 선험자요, 지혜의 임금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장 14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행복과 불행, 순탄과 역경이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보다는 불행의 순간들이 휠씬 더 많습니다. 웃는 날 보다 우는 날이 더 많습니다. 찬란한 햇살 아래 거닐 때보다, 어둠 속에 허덕일 때가 더 많습니다. 형통의 날보다 고통의 현실이 더 깁니다. 우리 인생이 직면한 고통의 모습은 형형색색입니다. 그 고통의 종류와 아픔, 그 아픔의 크기와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더욱이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고통의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을 때입니다. 이별, 사별, 파산, 가난, 질병, 사고, 재난, 실패, 실망, 절망, 좌절, 낙망, 상처 등 그 고통의 종류와 아픔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 심지어 어떤 종교에서는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나타나는 그 고통의 종류가 8고(苦), 16고, 32고, 64고, 128고 등으로 그 고통의 종류를 나열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인생이 직면한 고통이 불시에 금찍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긴 시간 떠나지 않고 늘 흐르는 세월과 함께 고통을 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어찌하여" 탄식하는 절규의 소리들
고통의 인물의 대명사인 욥의 경우도 보면, 어느 날 하루에 갑자기 엄청난 불행과 재난이 동시에 불어 닥쳤습니다. 쉼없이 타들어 오는 산불처럼, 재난의 불길이 순식간 돌진해 왔습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순간에 설상가상으로 고통의 복병과 폭풍이 휘몰아치게 되었습니다. 욥이 기대했던 자신의 삶이 "늘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자신의 날이 모래알처럼" 많을 줄 알았는데(욥29:18) 결국은 "바라던 행복을 살라지고 화만 찾아오고, 기다리는 광명이 흑암이 되어 버린"(욥30:26) 잿더미 현장을 보면서, 이처럼 인생무상과 고통의 현실을 푸념하였습니다.
고통의 잿더미위에서 욥은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4번씩 연속적으로 탄식합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어서 죽지 않고 살아나왔는가, 어찌하여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때, 내가 죽지 않았는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고, 어찌하여 내가 어머니 젖가슴을 빨아 살아 남았는가"(욥기3:11). 욥 자신이 당면한 고통의 아픔을 표현의 극치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격노나 하나님에 대한 도전적 원망이 결코 아닙니다. 그 만큼 그가 당면한 고통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요 그가 당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에 대한 심정의 폭로일 것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폭발하는 분노의 감정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여, 아무리 믿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드리려고 해도,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넘을 때가 있습니다. 참고 참으면서도 어쩔 수 없고, 너무나 고통이 극심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용납이 되자 않아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한 분노가 폭발할 지경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가령, "애지중지하게 키운 외동 딸의 갑작스런 죽음", "너무나 인품과 믿음이 좋은 남편의 사별", "평생 알뜰하게 모아둔 물질이 하루 밤 사이에 증발되는 사건", "장래가 총망한 신혼부부의 불행스런 사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가장의 쓰러짐", "믿었던 친구의 돌별적인 배신" 등 너무나 큰 충격적 사건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이 때, 아무리 연륜이 깊은 믿음 가진 성도라 할찌라도 하나님께 분노하며 격정이 폭발할 경우가 있습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자식들을 잃고, 모든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온몸에 욕창까지 생기고, 아내마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는 독설 속에서, 그는 도무지 자신의 고통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평소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았기에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하나님에 반항하였습니다. "오늘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다. 내가 받은 재앙은 내가 지금 내밷는 탄식 보다 더 무겁고 힘든 것이다"(욥23:2). " 왜 하나님이 나에게 폭풍으로 나를 겪으시고, 까닭없이 내게 상처를 많이 내시고,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하시고, 온갖 괴로움으로 나를 채우십니까?(욥9:17, 18)"라고 극한 감정, 마음에 가득한 분노가 폭발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당면한 그 고통의 원인과 이유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분노, 선하신 하나님이 믿음으로 사는 자신에게 주시는 결과와 보상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이 때, 믿음의 사람들 조차, 신앙의 회의론자, 믿음의 불가지론자,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늪에 빠지거나 깊은 영혼의 침체와 혼란기 빠질 수 있습니다.(다음 주 고통에 대한 성경적 답변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