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충만하고 담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항상 그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앞길에 다가 올 시련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고난의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나아갔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기억해 보라. 그는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고 아합과 이세벨에 맞서 담대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참된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며 뒷걸음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서 당당하고 성령충만하게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두려워 하는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 하는가? 이는 실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할 자리에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다면 어찌 그를 영적리더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삶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제자라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 할 대상이 누구란 말인가?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던 중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나게 된다. 그 때 성령충만한 베드로는 걸음을 멈추고 담대하게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고 기도하자, 그 앉은뱅이는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놀라운 사건은 변두리 인생을 살아왔던 그 앉은뱅이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으며, 그를 하나님의 은혜의 중심에 서도록 만들었다. 남들이 기도하는 시간에 거리에서 구걸만 하던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하여금 온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담대하고 용감한 제자들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 당시 사도들은 성령충만해서 많은 이적을 나타냈다. 비록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전도활동과 은사활동을 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전도를 계속 수행했던 것이었다. 이전의 연약하고 비겁했던 제자들이 이제는 복음의 군사들이 된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계신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부르심에 수많은 핑계거리를 대면서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있다. 왜 자신을 부인할 수 없단 말인가? 왜 그렇게 주저하고 있단 말인가? 성경에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직업이었던 어부로 돌아갔다. 어느 날 새벽 고기를 잡던 있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이 주님께 급히 달려왔다. 주님은 이들 제자들에게 과거사를 묻지도 않으시고 그들이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늘 미리 준비하여 주신다. 그리고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 이 질문은 2천년 전에 베드로에게 던지셨지만, 오히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인 것이다. 주님의 제자로서 당신을 부르시겠다는 것이다. 담대히 주님의 길을 따라올 수 있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과연 당신은 어떠한 대답을 하려는가? 이제 그 몫은 당신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