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들이 밀집한 아라비아 반도에 개혁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고 더가스펠코얼리션(The Gospel Coalition, TGC)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라비아 반도는 땅의 4분의 3이 매우 덥고 건조한 사막이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인구는 중앙 사막지역에서 떨어진 페르시아 걸프만과 홍해 지역에 살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경우는 정치적인 환경이 더욱 열악하다. 오픈도어가 매년 발표하는 박해국가 순위 50위 안에 중동 지역의 7개 국가가 포함돼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교회는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내전이 진행 중인 예멘에서는 소수 기독교인들의 박해가 더욱 심하다.
그 가운데 그나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다.
UAE 역시 이슬람 국가로서 이슬람을 폄훼하는 웹사이트는 금지돼 있으며,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거나 무슬림을 개종시킬 경우 추방당한다. 헌법은 ‘모든 시민은 무슬림’이라고 선포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이슬람법을 가르치고, 다른 종교로의 개종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2001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맥 스타일스는 “다른 중동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곳은 자유의 오아시스와 같다”고 말한다. 그 한 예로 UAE가 시민들의 개종은 금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는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스타일스는 두바이로 옮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기 시작할 때, 그들에게 연결시켜 줄 교회가 없었다. 그는 두바이에 있는 두바이연합기독교회(United Christian Church of Dubai, UCCD)로 가서 가끔 설교를 전하며 리더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새로운 목회자 청빙을 위한 위원회를 조직했다.
스타일스는 캐피톨힐 침례교회 마크 덴버(Mark Denver) 목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덴버 목사는 교회 스태프였던 존 폴마(John Folmar) 목사를 떠올렸다. 폴마 목사는 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느꼈다. 상황은 완벽해보였다. 존과 그의 아내 케리는 덴버 목사가 질문을 다 마치기도 전에 ‘가겠다’고 답을 했다.
그러나 과정은 예상보다 순탄치 않았다. 많은 국제 교회들과 같이 UCCD 역시 대부분 교리적인 내용보다 포괄적인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단기간 체류하는 경우가 많았고, 초국제적이었다. 이는 서로에 대한 오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외로웠다. 무슬림 국가에서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교회들은 많지 않았다.
존 목사는 약 13년 동안 매주마다 인내심을 갖고 복음을 전했다. 교인들 중 일부는 이를 받아쳤고, 일부는 떠났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교회는 확장되어 갔다.
그는 “지금 우리는 3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이들은 잘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우리와 마음이 맞는 7~8개 교회가 있다. 이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샤리아법이 적용되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복음의 오아시스에 대한 가르침은 계속 확산하고 있다.
존 목사는 “이는 사람이 조정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복음 전파의 은혜와 제자화, 말씀 전파를 하게 하신다”고 말했다.
존 폴마 목사가 선교사가 되기까지
28세 때의 존은 큰 일을 하고 싶었고, 거의 다다랐다. 두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그는 워싱턴 D.C에 살면서 전 공화당 상원의원인 제시 헤름스의 법률 상담을 맡았다.
그는 ‘The Underestimated Gospel’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원하던 곳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빈 것 같고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루는 달리기를 위해 외출을 했는데, 캐피탈힐 교회에 멈추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마크 덴버 목사와 대화를 하면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도덕적으로 실패한 삶을 살았음을 깨달게 되었다.
캐피톨힐 교회는 팔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시켜주었고 케리 해리슨(Keri Harison)이라는 인물도 소개해주었다. 그녀도 역시 교회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원의 법과분사위원회에 속해 있었고 부분적인 낙태 금지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다.
존과 케리는 캐피톨힐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첫번째 커플이 되었다. 존은 자신이 덴버 목사의 제안에 이끌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는 덴버 목사가 모든 이들이 그런 식으로 느끼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무시했다.
그는 “처음엔 거부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목회자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후, 덴버 목사와 사역에 대한 비전을 나누었고, 정치를 향했던 나의 모든 삶이 조정되었다. 이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고자 하는 열망이 커졌다”고 말했다.
몇 년 후, 그는 남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캐피톨힐 침례교회의 협력 목사가 되었다.
두바이의 상황은 여전히 어렵지만 존 목사와 케이 사모는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에서 선교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이미 준비된, 국제적인, 영어권 교인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