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마저도 인내와 훈련의 장소라고 불리는 '광야'로 들어가기를 원치는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오히려 안락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 진실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광야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대답해야 될 질문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1.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있는가?
누가복음 14:27절에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요즘 사람들은 예수님을 좇는다고 하지만 진실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만 그렇게 언급하는 것 같다. 이들은 분명 일대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도 수동적이며, 상당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 제자들로서 삶에는 근심과 염려로 열정이 식어버린지 오래된 자들이다. 예수님은 과연 이러한 자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실까? 그들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나 혹은 타인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고, 건강 혹은 얄팍한 믿음을 원하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즐겨왔던 세상적인 것들을 내려 놓고, 즐겨하던 취미생활, 재물에 대한 애착, 인본적인 인생목표 그리고 본인 중심적이고 가족 위선주의에서 멀어지라는 것이다. 그때서야 당당하게 그 광야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며 졸업도 가능할 것이다.
2. 자신의 목숨을 잃고자 결심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또한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요즘에는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이들은 회개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제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이들을 향하여 주님은 '너희의 헌신'을 보이라고 말씀하신다. 로마시대 때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가장 잔인한 형벌 중의 하나였다. 죄인은 그 십자가를 처형 장소까지 끌고 가야만 했다. 그 죄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직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서야만 했던 것이다. 즉 예수님은 지금 제자의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당신에게 "네 목숨마저도 포기하고 나를 따라올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3.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제자의 길을 가는 이들은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솔직히 한 시간을 기도하는 것보다,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장시간의 회의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울 수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나만 외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기도 그리고 그 음성만을 따라 내 마음과 발걸음을 옮기기를 재촉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반쯤 헌신하는 것도 원하시지도 않고 세상적인 목자들처럼 숫자에 민감하지도 않으시다. 단 한 명이라도 그의 절대적인 헌신과 희생을 원하신다. 현대의 교회는 군중들을 예배당 안에 모아 두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제자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진정한 제자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당신에게 그 광야의 학교에 입학하라는 것이다. 비록 당신이 "훈련받지 않고서도 주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치더라도 너무나도 연약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아신다. 그러므로 광야의 학교를 통하여 성령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음성만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를 재촉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광야의 학교로 들어서는 그 문을 두드릴 자신이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