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신학사 개관
로저 E. 올슨 | 박욱주·이종원 역 | 크리스천투데이 | 236쪽 | 13,000원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용하지만 누구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단어들이 몇몇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복음주의(evangelicalism)'일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복음주의'라고 소개하지만, '복음주의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막상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도 '복음주의'에 대한 정의를 시도해 왔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데이비드 베빙턴(David Bebbington, 1949-) 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 역사학 교수가 규정한 복음주의 핵심 4요소, '베빙턴의 사각형'으로도 불리는 회심주의·성경주의·십자가 중심주의·행동주의이다.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를 쓴 이재근 박사(웨스트민스터신대원)도 "신학 진영으로서 오늘날 복음주의 진영은 에큐메니칼-자유주의 진영과 일정한 구분선을 긋고 있는 집단으로, 한 특정 교파나 신학체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보편적 신앙고백 아래 묶인 느슨한 신앙공동체이므로 특정 신학 전통만을 독점적·배타적으로 따르지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균형감을 갖춘 명쾌한 해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복음(gospel)' 자체의 폭이 넓기도 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신학 또는 목회가 정통에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 이 용어를 갖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이란 그 옛날부터 회자됐지만, 지금까지도 '유통기한'이 만료되거나 더 이상 쓸모가 없어 폐기되지 않고 지금도 논의되고 변화를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 신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복음주의 역사신학자 로저 E. 올슨(Roger E. Olson)의 책 <복음주의 신학사 개관(원제 Pocket History of Evangelical Theology)>의 출발도 바로 그 지점, '과연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시작은 불안하다. "복음주의는 엄밀하게 동의된 의미가 부재하는 사상과 범주로서, 본질적으로 이론(異論)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개념(도널드 데이턴)"이라는 것이다. "복음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은 몇몇 경우에 타당해 보이며, 이 같은 용례는 통시적·공시적 관행으로 정당화된다."
저자는 복음의 어원과 예수 그리스도, 초대교회로부터 출발해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 경건주의, 18세기 대각성운동과 청교도, 19-20세기 舊프린스턴 신학과 성결-오순절주의, 근본주의를 거쳐 오늘날 대중들이 이해하는 의미까지, '복음주의' 신학의 기원과 역사를 소개하면서 논의를 출발한다. 그것이 1부 '서론: 복음주의의 정의'와 2부 '복음주의 신학의 기원'의 주 내용이다.
여기서 저자는 "복음주의 신학을 가장 간단히 정의하자면, 역사적 개신교의 정신을 목적으로 삼는 복음주의적 운동의 맥락 안에서 형성된 신학"이라며 "복음주의자들은 문화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일을 지양하고 비판하지만, 동시에 현대적 소통 수단을 사용하여 복음을 문화의 표현방식대로 해석해 보여주면서 현대의 문제들과 연관시키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1-2부에서 언급한 복음주의 역사와 그 신학적 특색은 3부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살펴보려는 '1940-50년대 후기근본주의적(Postfundamentalist) 복음주의' 신학을 위한 전제이자 배경이 된다. 이 신학 사조를 이끈 복음주의 신학자와 운동가들은 1942년 풀러신학교 초대 총장인 해럴드 오켄가(Harold John Ockenga, 1904-1985)를 중심으로 '전국복음주의협회(NAE)'를 창설하면서, 근본주의 운동에 말 그대로 새로운 얼굴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이끌어갔다.
NAE는 이전의 근본주의자들처럼 자유주의에 대항해 격렬한 투쟁을 벌이기보다, 가능한 한 많은 수의 회심주의 및 보수주의 개신교인들을 포용해 협력을 증진하고, 문화 전반에 강력한 복음주의적 증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긍휼(사랑)을'이라는 이들의 구호에 그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당시 교계를 주도하던 근본주의자들 입장에서 NAE의 헌장과 전망은 과도하게 넓은 범위를 포용하는 것이었던 만큼, 그들은 서로 간에 공존과 협력, 즉 복음주의자들 간의 동료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느슨한 복음주의 네트워크 형태를 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응집력 부족'이어서, 전망이 밝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한 명의 강력한 '지도자' 때문이었다. 1918년생으로 올해 100년째를 채운 빌리 그래함(Billy Frank Graham)이었다. 저자는 "빌리 그래함과 그의 사역이 없었더라면, 복음주의와 복음주의 신학 어느 편도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평가한다.
저자는 "후기근본주의의 모습으로 정착된 복음주의 및 복음주의 신학은 두 가지 사안에 주안점을 뒀는데, 이 사안들은 그래함이 제시한 양대 주제로부터 나왔다"며 "그것은 개인적 회심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께로의 회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계시하신 말씀인 성경"이라고 설명했다.
빌리그래함전도협회(BGEA)와 1947년 오켄가가 설립한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인 풀러신학교(Fuller),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알릴 잡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이후 복음주의의 구심점이 됐다.
책은 이후 풀러신학교 창립 교수진의 일원이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창립 편집자로서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학장'으로 불린 칼 헨리(Carl F. H. Henry, 1913-2003), 헨리의 동료이자 오켄가의 후임으로 풀러신학교 총장을 역임한 에드워드 카넬(Edward John Carnell, 1919-1967), 침례교 신학자 버나드 램(Bernard Ramm, 1916-1992), '중재하는 신학자'로 불린 진보적 인사 도널드 블로쉬(Donald G. Bloesch, 1928-2010), 캐나다의 클라크 피녹(Clark Pinnock, 1937-2010) 등 '후기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중심인물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논의를 정리하면서, 로저 올슨 교수는 이 5인에 대해 "이들의 기초 신학방법론은 서로 일치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의 본성에 대해서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며, 완전 축자영감과 엄밀한 무요성 등 성서의 본성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며 "이들 모두는 무엇 때문에 '복음주의 신학자'가 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초자연적 삶의 영위와 세계관 정립에 전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자 구원자시라는 것,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분이시라는 것, 그분은 만물의 창조자시라는 것, 구원은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회심을 이룰 때 수여되며 이는 오직 은혜로만 가능케 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 전념했다"고 했다.
또 "이들은 전도와 사회활동을 통해 세계가 변화된다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상실된 인간성의 화해와 구속을 위한 유일한 소망이자 방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 힘쓴다"며 "그래서 이 5명의 신학자 및 모든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전체 기독교 신학계 내부에 존재하는 다른 많은 신학 집단 및 운동들과 비교할 때 상당한 수준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 내부와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 긴장을 유발하는 여러 요소들은 복음주의의 신학적 통일을 해체하려는 위협으로 다가온다"며 "복음주의는 상대적으로 통일된 모습을 보이는 하나의 운동으로 존속해 왔으나, 내부 분쟁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더 이상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책은 이런 긴장 요소, 즉 칼빈주의 vs 아르미니우스주의, 개혁론자들(reformists) vs 전통주의자들(traditionalists), 성경 무오성(inerrant) vs 무류성(infallible),광의의 관점(broad view)과 협의의 관점(narrow view), 열린 유신론(open theism), 포스트모던 사상의 차용 등을 간략하게 개관한다.
그리고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스탠리 그렌츠(Stanley J. Grenz), 케빈 밴후저(Kevin Vanhoozer), 낸시 머피(Nancey Murphy) 등 젊고 혁신적인 사상가들과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노만 가이슬러(Norman Geisler), 알 몰러(Al Mohler Jr.) 등 복음주의의 전통적 정체성과 경계를 수호하려는 신학자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복음주의 신학의 교과서'를 마무리한다.
본서 역자는 "이 책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국교회가 작금의 반목과 분열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과 일치를 이뤄 아름답고 의로운 미래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일에 공헌하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저자의 《The Westminster Handbook to Evangelical Theology》를 보다 간결하게 정리한 책 《Pocket History of Evangelical Theology 》를 번역한 것이다.
로저 올슨 교수는 독보적 역사신학 전문가이자 지역교회 강단을 사랑하는 목회자로서, 美 라이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베일러대 조지 트루엣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본서를 비롯해 <신학 논쟁(God in Dispute: Conversations Between Great Christian Thinkers, 새물결플러스)>, <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How to be Evangelical Without Being Conservative, 죠이선교회)>,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Finding God in the Shack: Seeking Truth in a Story of Evil and Redemption, 살림)>,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신학(The Story of Christian Theology)>, <삼위일체(The Trinity, 대한기독교서회)>, <20세기 신학(20th-century tbeology, IVP, 공저)> 등을 썼다.
이 책에 대해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는 "'복음주의 신학'의 현주소와 전망을 제시하는 탁월한 개관서",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총신대 전 총장)는 "변화무쌍한 오늘의 사회적 환경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복음주의의 가능성 발견"이라는 추천사를 각각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