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을 3주 남짓 남겨두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 빠른 물보다 더 빠른 거 같다. 미국에서는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있는 추수감사절 (Thanksgiving)이 끝나면 많은 상점들은 12월 절기들을 겨냥하여 실내 장식을 바꾸고 대대적인 바겐세일에 들어간다.
12월의 명절은 유대인들의 하누카와 그리스도인들의 성탄절이다. 일반적으로 하누카는 성탄절이 시작되기 두 세 주 전에 있다. 하누카는 히브리어로 "봉헌하다"는 의미의 "하나흐"에서 비롯되었다. 2017년 하누카는 12월 12일 해진 후에 시작되어 12월 20일 해질 때까지 8일간 계속된다. 요한복음에도 기록된 수전절/하누카를 맞으면 유대인들은 하누카 노래를 부르며, 하누키아라는 8 개의 촛대에 하루에 하나씩 불을 밝히며 절기를 기념한다. 이 기간에 회당에서는 민수기 6:22- 8:4절까지의 내용을 읽는다. 그리고 이웃간에 선물을 교환하며 "사메아흐 하누카" 곧 "즐거운 하누카 되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하누카의 역사적 배경
겨울에 있는 유대인들의 즐거운 명절인 하누카는 주전 168년 마카비 반란과 관련이 있다. 주전 168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Antiochus Epiphanes IV)는 예루살렘의 스룹바벨 성전에서 제우스(Zeus)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관리와 군사들을 유대인 마을들로 보내며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우상에게 절하고, 돼지 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팔레스틴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격동시켰다.
안티오쿠스가 파송한 관리는 예루살렘의 북서쪽 약 40 Km 떨어진 모디인 (Modiin)에도 이르렀다. 모디인에 도착한 관리는 레위 지파 출신인 제사장 마타티아스(Mattathias)에게 이방 제사를 집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안티오쿠스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왕이 파송한 관리를 살해하였다. 그리고 마타티아스는 유다 마카비를 포함한 다섯 아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과 연합하여 왕이 파견한 부대를 전멸시켰다. 이것이 마카비 반란의 시작이다.
안티오쿠스 왕의 파견 부대를 궤멸시킨 유대 반란군은 모디인 인근 야산으로 피신하였고,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비는 이 반란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유다 마카비는 반란 세력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웠고, 급기야 주전 164년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안티오쿠스는 스룹바벨 성전 내의 번제단에 이교도 제단을 세우고 우상에게 희생 제물을 드렸다(마카비상 1:41-64). 우상은 제우스 올림피우스(Zeus Olympius)로써 바알 샤마임(Ba'al Shamayim)으로 불렸다. 이방 제사와 함께 하나님의 성전 기명들은 분실되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이에 유다 마카비는 오염된 제단을 새로 짓고 성전 기명들도 새로 만들어졌다. 성전을 청결케하고, 촛대(Menorah)에 불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성전 안을 밝힐 정결한 감람유(olive oil)는 하루치 양 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서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하루 분량의 감람유로 정결한 감람유가 준비될 때까지 8일 동안 촛불이 꺼지지 않고 기적적으로 켜져 있었다는 것이다.
마카비서에 기록된 수전절/하누카에 관한 내용이다: 유대인들은 팔일 동안의 성전 봉헌(하누카)을 기뻐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봉헌한 날을…해마다…팔일 동안…지킬 것을 공포하였다(마카비상 4:56-59).
요세푸스는 하누카/수전절을 빛의 절기(Festival of Lights)로 표현하였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유대인들은 하누카 (수전절)를 지킨다. 하누카(수전절)는 유대 월력으로 키슬레브 (Kislev) 25일부터 8일을 지키는데 지금의 12월 초나 중순에 해당된다.
유대인들이 하누카를 지키는 과정
1) 하누카 절기에 대해 공부/ 하누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신 것과 그 날에 일어났던 기적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약속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은 세상의 그 어떤 강한 군사력도 능가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유대인들의 거룩한 성전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에 의해 더럽혀졌고 유대인들은 이방 신들을 예배하도록 강요 받았다. 그러나 마카비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성전을 되찾았으며 성전을 청결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였다. 그런데, 거룩한 성전 안은 촛불이 영원히 켜 있어야 하는데, 불을 밝힐 기름은 하루 분량 밖에 없었다. 거룩한 기름을 마련하는데 8일이 필요하였다. 어쩔 수 없이 마카비는 하루 분량의 기름으로 성전 촛대에 불을 밝히기로 결정했다. 여기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하루 분량의 기름으로 8 일간 성전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하누카를 맞으면 유대인들은 이런 내용들을 다시 듣고 다시 배우고 또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2) 하누키아 촛대 준비/ 9개의 촛대가 있는 하누키아를 준비한다. 9개의 촛대 중의 조금 긴 한 개는 샤마쉬라고 부른다. 샤마쉬에 켜진 촛불로 나머지 8 개의 촛대에 불을 밝히는 것이다. 하누카의 첫 날, 샤마쉬에서 불을 가져와 첫번째 촛대에 불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하누키아는 밖에서 잘 볼 수 있도록 창가의 왼쪽에 위치해 둔다. 지나는 사람들이 하누카의 기적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하누키아의 촛불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루에 한개씩 모두 8 일간 불을 밝혀간다.
3) 축복문을 암송/ 하누키아에 불을 밝히면서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은 축복문을 암송한다. Baruch Atah Adonai Eloheinu Melech Ha'olam, asher kidshanu b'mitzvotav v'tzivanu l'hadlik ner shel Hanukkah (바루흐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멜레흐 하올람, 아쉐르 키드샤누 베미쯔보타브 베찌바누 레하들릭 네르 쉘 하누카) 우리의 하나님, 영원하신 왕, 주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주는 하누카의 촛불을 밝히기 위한 주의 계명과 가르침을 지키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나이다. 하누키아에 매일 불을 밝히면서 유대인들은 이 같은 축복문을 매일 반복해서 암송한다.
4) 드레이들 놀이/ 스비본 또는 드레이들이라 불리는 팽이 놀이를 한다.
5) 선물/ 어린이들에게는 작은 선물을 주며, 어른끼리는 종종 하누키아, 품질 좋은 기름, 유대인 전통 요리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6) 음식/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는다.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는 이유는 감람유에 얽힌 기적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또한 유제품도 많이 먹는다. 그 이유는 유딧의 선행을 기념하는 것이다. 유딧은 자기 마을을 공격하는 시리아 장군에게 소금에 절인 치즈와 포도주를 마구 뿌려 그를 당황케 하고 살해하므로 마을을 구했던 유딧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7) 티쿤 올람 (Tikkun Olam) 전통/ 티쿤 올람이란 히브리어는 „영원히 새롭게 하다‟는 의미이다. 그 어떤 우상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긴다는 전통을 하누카 때에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티쿤 올람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듯 하누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열망에서 비롯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메시아가 오시기 약 150년 전에 시작된 유대인들의 좋은 전통임에도 그들은 나사렛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일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후 2 천 년이 지났음에도 잘못된 전통은 계속되고 예수님=메시아는 거부되고 있다. 때로는 전통이 왜곡되어 사실을 변질시키기도 한다.
하누카 놀이
이 기간에 유대인들은 스비본 또는 드레이델 (dreidel)이라 하는 독일에서 시작된 팽이 놀이를 한다. 팽이는 네모 모양인데, 각 면에는 눈, 김멜, 헤, 쉰 이렇게 히브리어 네 글자가 쓰여 있다. 이 게임은 마치 한국인들이 명절을 맞으면 윷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초콜릿으로 만든 게임용 동전, 견과류, 약간의 선물들을 게임에 건다. 그리고 네 글자가 쓰여진 팽이를 윷처럼 판 위에서 돌린다. 팽이가 돌다가 쓰러지면 어느 한 글자가 위로 보이는데, 눈이 나오면 꽝, 김멜이 나오면 모두 갖는다. 헤가 나오면 절반을 갖고, 쉰이 나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어느 하나를 내어 놓아야 한다. 여기에서 히브리어의 네 글자는 “네스 가돌 하야 샴” 곧 히브리어로 “놀라운 기적이 그곳에서 있었다”라는 문장의 첫 글자이다.
하누카 음식
하누카 때에 먹는 음식들은 기름에 튀긴 것들이 많다. 기름에 튀긴 음식을 먹는 이유는 성전의 기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누카 절기 음식들에는 르비보트라고 하는 채 썰어 튀긴 감자 요리, 딸기 잼을 듬뿍 넣은 스푸가니야는 우리가 잘 아는 고로께 빵과 모양이나 맛이 비슷하다. 유대인들은 스푸가니야 위에 설탕 가루를 많이 뿌려 먹는다. 그리고 꿀과 오렌지를 버무려 기름에 튀긴 작은 도넛을 먹는다. 하누카 기간에 이스라엘에서 소비되는 도넛은 약 1,800만개에 이른다.
복음서에 기록된 하누카 (수전절)
수전절은 성전을 꼭 방문하는 절기는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전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요 10:22-23). 요한복음10:22 절의 수전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약 3개월 전인 초막절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 그 초막절부터 수전절까지의 이야기들이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요7:11-52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오셨기 때문에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고조됨
요7:53-8:11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건
요 8:12-20 초막절 후 세상의 빛이라 증거하심으로 바리새인들이 대단히 분노함
요 8:21-59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함
요 9:1-41 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치심. 관원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함을 금함
요 10:1-21선한 목자의 비유
초막절 때의 기록인 요한복음 7:10-10:21절과 수전절 때의 사건인 요한복음 10:22-39절 사이에는 약 3 개월 간의 시차가 있다. 바로 이 3 개월 동안 예수님은 유다 지방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누가복음 10:1-13:21절에 기록되었다.
눅 10:1-24 유대 지역을 전도한 70제자들이 돌아오자 그들의 일로 인해 기뻐하심
눅 10:25-37 영생에 대한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
눅 10:38-42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영접
눅 11:1-13 기도에 대한 모형을 주시고 기도하라 권고하심
눅 11:14-36 바알세불과 관련되었다고 모독 받으심
눅 11:37-54 한 바리새인과 식사하시는 도중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을 엄히 책망하시므로 그들의 적개심을
눅 12 일으키심 제자들에게 위선, 탐욕, 걱정, 깨어 있음과 자신에게 임박한 고난을 말씀
눅 13:1-9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과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의 비유
눅 13:10-21 안식일에 병든 여인 고치신 것을 회당장이 비난하자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심
요 10:22-39 수전절까지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밝히지 않으시되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함
수전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은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성전 안 솔로몬 행각으로 가셨다. 솔로몬 행각 (Solomon's colonnade)은 솔로몬 성전과는 관련이 없는, 헤롯 성전의 동쪽에 위치한 열주들이 위치한 주랑을 가리킨다. 솔로몬 행각에서는 주로 모임과 교육이 이루어졌다 (요 10:24, 행 3:11, 5:12; 눅 2:46, 요 7:14 참고).
초막절부터 수전절까지 약 3개월의 간격이 있지만, 여전히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었다. 초막절 때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있었다: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요 7:31). 그러나 믿는 무리들과는 다르게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송하였다(요 7:32). 초막절 때의 이런 갈등은 수전절에도 계속되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 . 유대인들은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였다 (요 10:24-31).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메시아 의혹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고 저희는 나를 따르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것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도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그러나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깨달으리라 (요 10:26-38).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은 저희를 떠나 요단강 동쪽 요한이 처음 세례 주던 곳으로 가 거기 거하셨다(요 10:40). 수전절 곧 겨울의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을 다시 찾으신 예수님, 유대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 광야를 통과하여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 그곳에 얼마간 머물러 계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중요한 계시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은 모음집이 아니라, 수 많은 이야기들이 짝을 맞추고 보완하며 중요한 계시의 축을 이루고 있다. 말씀의 지도자들은 성경의 배경에 대해서 더욱 연구하고 정말 이 말씀이 그러한지를 알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의 전통(tradition)을 무시할 수는 없다. 유대인들에게 전통은 그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마치 몸과 영혼의 관계처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유대인들에게 전통을 제한다면 그들은 허수아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과 경건을 제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생각해 본다.
더 자세한 문의는
Rev. Joo Seob Lee biblicalgeography@gmail.com
Director of Institute of the Biblical Geography (in Georgia Christian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