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 목사가 6일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제7회 총회에서 이동석 목사(예성 증경총회장)에게 대표회장직을 물려줬다. 지난 2012년 출범한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지난달 그 이름을 한기연으로 바꿨으니, 정 목사는 한교연의 마지막 대표회장이었던 셈이다. '한기연'으로 제2막을 연 한교연의 제6대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가 돌아본 지난 1년은 어땠을까?
그가 취임하던 올해 초는 기독교계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던 때였다. 안으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교연의 통합이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그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또 밖으로는 '탄핵 정국'이 한국 사회 전체를 강타하고 있었다. 정 목사는 교회 통합과, 정국 안정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이라는 두 가제 과제를 동시에 안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 목사는 실타래를 풀어갔다. 한기총과의 통합은 소위 '이단 문제'라는 걸림돌이 있었지만,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으면서 잠정적으로 통합을 선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이었던 이영훈 목사가 갑작스레 '직무 정지'를 당하면서 통합 논의를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우리(한교연)로선 대화 상대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통합과 관련해 한기총 측에서 전권을 위임받았던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직 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거의 성사 단계에 있었던 통합 절차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통합은 멈출 수 없는 과제였다. 한교연은 한국교회교단장회의(교단장회의) 측과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한기총이 정상화 될 때까지, 어떻게든 통합의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함이었다. 한교총의 사실상 모태였던 교단장회의 측도 한교총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통합 논의에 적극 참여했다.
그 열매가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이었다. 양측은 한기연 창립총회까지 개최하면서 통합을 기정사실화 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기연 정관 등에 대한 이견으로 통합은 결렬됐고, 결국 한교연은 한기연으로, 교단장회의 측은 한교총으로 각자의 길을 갔다.
정 목사는 끝내 이루지 못한 통합이 못내 아쉬웠다. 두 번의 통합 과정에서 보았던 소위 '힘의 논리', 대교단·대형교회의 지나친 자기 과시 등 상대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통합의 한 축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기연 제7회 총회 현장에서 총대들에게 거듭 사죄의 뜻을 전했다.
한편 대통령 선거와 이후 종교인 과세 논란, 동성애 대처 등은 정 목사가 대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엄기호 목사가 한기총 새 대표회장이 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정 목사가 유일한 보수 연합기관의 대표였다. 그는 새 정부의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면서 보수 교계의 입장을 전달했고, 특히 종교인 과세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연합기관들을 한데 묶어 테스크포스(TF)팀을 꾸리는 데도 앞장섰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정 목사는 "비록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최선은 다했다"며 "사실 처음 취임할 때는 이토록 많은 과제가 내게 주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면서 고생도 많이 했는데, 또 그 만큼 보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회장직에선 물러났지만 못다한 한기총과의 통합을 위해 계속해서 역할을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