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A.D.90년에 얌니야 회의에서 오늘날 우리가 성경으로 간주하고 있는 구약 39권이 정경으로 체택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얌니야 회의 때는 어떤 성경 사본을 근거로 성경을 체택하였나요?
Answer: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본에 근거했느냐 하는 점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또는 아람어)로 기록된 것으로 "소프림"이라 불리는 서기관들이 표준적인 히브리어 자음 본문을 베껴서 전해준 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단권으로 묶은 것이 아니라 각 책별로 따로 보관되어 각 회당에서 읽혀졌습니다. 얌니야 종교 회의가 열리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A.D.70년에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정렴당한 일입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나라와 성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제사장(사두개인들)들이 몰락하고, 율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바리새인들(율법교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나라와 성전을 잃은 후에 기록된 성경 말씀과 회당 중심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강조되면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보존하고 가르쳐야 할 정경을 선택하는 문제가 촉진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의 도전입니다. 이미 1세기 후반에 기독교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선교 활동으로 인해 로마의 심장부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구약 성경 외에 사도들의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받은 편지나 책들을 수용하여 각 교회에서 집회 때마다 읽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기독교의 도전 앞에서 자신들이 지켜야 할 정경들을 결정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정경 선택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이로 인해 90년경 얌니야에서 회의를 열고, 그 동안 유대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 받아왔던 책들을 정경으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그들이 정경을 선택할 때에 참고로 한 점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입니다. 1) 이 책이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가르치고 있는가? 2) 이 책이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을 받아 왔는가? 3) 이 책이 권위 있는 저자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쓰여졌는가? 4) 이 책 안에 신적인 권위를 입증하는 증거가 있는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원칙들에 입각하여 그 동안 유대 교회에서 거룩한 책들로 수용되어 왔던 책들을 정경으로 체택했으며, 이 책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39권과 일치하고 있습니다(히브리 성경은 상-하서를 한 권으로 묶었기 때문에 22권)
[출처:biblena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