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당신을 실망시켰다면

 

라비 제커라이어스 | 권기대 역 | 에샌티아 | 384쪽 | 16,000원

변증은 인기 있는 과목이 아니다. 최소한 지금의 사회에서는 그렇다. 지금은 논쟁의 시대이고 말발의 시대다. 사이다 같은 발언을 좋아한다.

문제는 그 사이다 발언에 진실이 없는 경우도 다수 있고, 또 있더라도 팩트를 과장·축소하거나 부분적 강조 및 왜곡을 하고, 심지어는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거다. 그 속에서 내가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문제를 지적해도, 쉽게 사람들의 동의를 얻게 되는 경우는 드문 듯 싶다.

어느 주장이 사이다 발언이냐로 승패가 귀결되는 듯하다. 논쟁도 이기면 그만이다. 진실이 어디 있느냐는 부차적인 것 같다. 하지만 변증은 논쟁이나 단순한 토론과는 차이가 있다. 변증은 글자 그대로 증명이다. 변론하고 증거를 대어, 자신이 제시한 명제가 옳은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신학교에서는 변증학이란 과목도 있다. 또 예수님이나 바울도 자주 진리를 변증하곤 했다. 굳이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믿는 신앙을 잘 변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주 오해한다는 것이다. 변증을 토론과 혼동해서, 그저 논쟁과 대화에서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 싶다. 앞서 언급한 사이다 발언이나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막무가내 방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신앙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나도 그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청년 시절까지 논쟁은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특히 신앙 문제는 그랬다. 게다가 대학 시절 반 년 좀 못되게 몸담은 근본주의 색채가 강한 모 선교단체의 영향은, 대학 시절 더 강렬했던 것 같다.

교회를 다니지만 범신론적 신앙을 가졌던 학과 친구와의 신앙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 광경을 지켜봤던 다른 친구가 너희들 왜 싸웠냐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전도도 그랬다. 이단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이단에 속한 이들을 여럿 만났을 때도 밀리지 않았다. 논쟁에서 대부분 이겼다고 할 수 있었다. 내 논리는 틀리지 않았고 상대도 틀리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내 의견에 동조는 하지 않았다.

문제가 무엇일까? 옳은 이야기인데, 지금도 비슷한 실수를 하곤 하지만 자주 놓치는 것은, 논쟁이나 토론의 승리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과는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변증은 단순히 토론을 이기기 위함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내가 믿고 있는 사실이 옳음을 증명함이다. 또 그 믿는 사실을 상대도 동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아무리 옳아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나만의 독선이 되기 쉽다. 그러기에 상대가 동의할 수 있도록 그의 관점에서 논증을 펼치고 그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이전의 많은 논쟁이 우리 편(?)을 만족시키는 것은 성공하지만 상대방의 동의까지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나 세상의 변증과 기독교 변증은 단순히 우리가 믿는 명제를 옳다고 증거하고 상대의 동의를 얻는 것을 좀 더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변증이 복음의 증거라는 사실이다. 즉 복음 증거는 상대방에게 복음을 잘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가 지식적 차원을 넘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인기가 시들한 면이 있지만, 적지 않은 변증서들에서 이런 전도적 차원을 잊고 쓰여진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 변증이 기독교인이 읽기에는 옳은 듯 싶지만, 정작 진영 논리에 그칠 수 있음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저자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
저자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

그런 점에서 라비 재커라이어스의 책 <기독교가 당신을 실망시켰다면>은 기존 변증서들과는 격이 다른 것 같다. 변증서라고는 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신학적 접근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기독교를 변론하고 입증해 간다. 그러면서도 복음의 핵심과 성경적으로 중요한 문제와 시대적 논점들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이 제일 먼저 다루는 것이 '예수는 누구인가?'이고 그 다음 장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임을 볼 때, 본서는 복음의 핵심과 가장 중요한 과제를 놓치지 않는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없이, 책제목이 다루듯 '기독교가 당신을 실망시켰다면'이란 문제는 의미 없기 때문일 게다.

본서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믿음으로 이끌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다시 각인시키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재음미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얻는 많은 유익과 변화를 다시 묵상하도록 이끌면서, 보다 깊은 단계의 신앙생활로 들어가도록 돕는다. 주 오심을 고대하게 하고 기도의 깊이를 더하도록 돕는다.

저자는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뿐더러 적대적 입장이나 기독교에 대해 오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논증을 편다. 우리를 공격하는 세상 논리의 허구성을 공격하고, 관점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특히 로버트 프라이스의 <이성이 이끄는 삶>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부당한 공격의 문제를 잘 논박한다.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접근한다면서도, 이미 어떤 일에 대해 예단과 편견, 전제를 가지고 접근할 때가 있다. 지성인이라 하는 이들이 자신이 이미 가진 선입견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감정과 편견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가 있다.

저자는 로버트 프라이스가 갖고 있는 문제를 잘 해부한다. 이 시대 기독교에 대한 공격과 증오는 상당하다. 로버트 프라이스도 그러하다. 그런데 적지 않은 문제나 이슈가 기독교 공동체나 지도자 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주관적 지식과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세상의 부당한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로버트 프라이스를 통해 그가 이성을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이성적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도킨스 같은 경우도 과학과 이성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프레임 속에 갇혀 주관적 접근을 행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우리의 잘못은 무릎을 꿇고 사죄를 구해야겠고 그들의 이성적인 비판은 받아들여야겠지만, 부당한 공격은 논박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변증서의 성격을 가졌지만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다. 변증서에서 느낄 수 있는 오래된 서가의 냄새가 아니라, 지금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있는 현실의 문제도 잘 다뤄준다. 제목처럼 기독교가 나를 실망시키는 전통적인 문제와 지금 우리가 부닥치는 문제를 모두 포괄해서 다루기에, 신앙을 재정립할 뿐 아니라 다시 그 뜨거움과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