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하나님의 은혜
벤자민 마스트 | 황영아 역 | 그리심 | 246쪽
노희경 작가의 대표적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던 며느리가 자궁암 말기로 시어머니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을 알고, 돌봐줄 사람이 없기에 자신이 죽기 전 시어머니를 살해하려는 장면을 담아 화제가 됐다. 아마 그 장면을 본 사람은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찡한 울림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반말과 욕을 섞어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사랑이 좀 더 큰 애증일 것이다. 아니 현실은 더욱 가혹하리라. 아무리 사랑하던 이였어도 대화가 점점 끊어져 가고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 그 사랑을 지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감정으로는 사랑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최근에야 읽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소설의 내용을 떠나 주인공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이 갖는 특성을 잘 담아냈다. 소설이 가진 반전과 뒷부분의 충격적 결말은 알츠하이머병의 문제를 잘 이해한 작가의 고심의 열매일 듯싶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문제는 이미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질병들도 그렇듯, 일반인들의 상식과 이해는 피상적이고 왜곡돼 있는 경우들이 많다. 이러다 보면 그런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접근하기 두려워하거나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예전에 가족 중 자폐나 지적장애를 가진 성도를 돌보거나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분들을 접했을 때, 그분들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관련 전문서적과 기독교 서적을 찾아 지식을 얻고자 힘썼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쭙잖은 피상적 지식과 선입관이 그런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신질환과 귀신들림을 동일화함에서 오는 잘못된 대응이나 자폐를 그저 성격 문제로 치부함으로써 오는 일들은 환자나 가족을 더욱 힘들고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알츠하이머나 치매에서도 적용된다. 가족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말로만 듣던 질병이 부모님이나 배우자 또는 가족 중에 일어날 때 오는 당혹감과 두려움과 그 질병의 증상들은 환자와 가족을 힘들게 한다.
제대로 알 필요가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특히 신앙인으로서 어찌해야 할지 지도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또 그런 어려움에 빠진 가정을 돕는 교회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적지 않은 교회 공동체가 지식의 부족과 부담감 때문에 "기도하겠다"는 말뿐, 방관자로 머무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런 점에서 그리심에서 나온 벤자민 마스트의 <내 기억속의 하나님의 은혜: 알츠하이머병과 신앙>은 꽤나 유익한 책이다. 종종 이러한 책들이 기독교 서적이라는 표제를 달고 나오지만 전문 지식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경우도 있고, 반대로 전문 지식만 가득할 뿐 기독교적 관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굳이 기독교 출판으로 나올 이유가 있을까 하는 책들도 있었다. 특히 심리학 관련 도서들은 기독교 교리와 너무 동떨어진 책들도 있다. 유명 저자가 쓴 베스트셀러라 비평가들이 함부로 건들지 못할 뿐, 문제가 심각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벤자민 마스트의 본 저서는 이 양 날개에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알츠하이머를 전공하고 사역하는 교수로서 알츠하이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넘어, 고민하는 이들에게 세세한 사실과 함께 증상 등을 잘 설명한다. 또 지식적인 차원을 넘어 환자와 보호자들이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 대면하고 대응해야 할지 임상경험자로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단순히 가르치는 자로서가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들이 갖는 고민과 당혹감, 그리고 고충을 그들의 입장에서 같이 이해하고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점에서 따뜻함마저 느껴진다.
▲알츠하이머를 다룬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중 한 장면. |
알츠하이머는 그 증상이 극심해질수록 환자를 간호하는 보호자의 삶마저 얽매고 만다. 어떤 면에서 환자는 병이 진행될수록 고통과 불안은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보호자는 더욱 힘들고 어려운 고통 속에 빠지게 된다.- 자폐나 지적장애를 가진 자녀를 가진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일반학교를 보내느냐, 특수학교를 보내느냐의 선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부모'라는 한 학부모의 말은 그런 점에서 수긍이 간다.- 저자는 그 사실을 알기에 독자들에게 좀 더 신중하고 세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간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원제가 'Second Forgetting', 즉 '제2의 망각'인데, 그것은 신학적인 접근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즉 제2의 망각은 일반적 신앙 지식을 잊어가는 성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알츠하이머 속에서도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환자를 돕고 보호자를 격려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전문적인 의학과 간호의 지식을 넘어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교회의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과 방법론을 제시하고 성경적 원리를 생각하게 한다.
이전에 보았던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은 어느 날 많은 이들이 좀비로 변한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부모와 형제, 사랑하는 이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아픔과 이별을 겪는다. 그런데 그렇게 좀비로 변한 이들은 그들이 변하기 전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그 행동을 반복한다. 그들은 변했지만 그들의 절박하고 소중한 마지막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이것만큼은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그 잊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갈 때가 있다. 저자는 그 소중한 것을 잊지 않도록, 또 잃어버리지 않도록 독자들을 격려한다. 환자이건 보호자이건 말이다.
비록 알츠하이머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떠난 이들은 이미 오래 전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한 상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저자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추신: 1.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의문.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 성도들은 자신이 믿는 신앙에 대해서도 망각이 일어날텐데, 그 잊음은 정신의 문제일까? 또 그 상태에서 그 영혼의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2.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그런데도 이 책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이 책은 목회자는 필수적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고 성도들도 한 번쯤은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교회공동체나 모임에서 교재로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읽지 않음은, 잘 알거나 심각성을 모르거나 사랑이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책을 읽고도 당황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힘도 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과 공동체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읽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내 주변에 그런 이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내가 눈과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