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인류역사는 전쟁과 내전의 연속이었으며, 구약에도 124회의 전쟁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2011년 7월 9일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은 내전으로 나락의 길을 가고 있다. 남수단은 한반도의 2.9배 면적이며, 원유매장량이 세계 29위이지만, 현재 사람이 살기에 가장 힘든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남수단은 기독교 역사적 측면이나 선교적 측면으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북부의 수단은 이슬람 국가로서 2012년 다른 종교 종사자들을 모두 추방하였다. 모든 북아프리카는 이슬람화되었으며 남수단 중심으로 서부 아프리카도 점차 이슬람화 되어가고 있다. 남수단은 소수의 무슬림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기독교의 뿌리가 깊다. 남수단은 아프리카 선교의 전초기지와 이슬람의 확장을 저지하는 선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2. 수단 역사와 내전 원인
남수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역사와 내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수단의 역사
수단은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큰 국가이며, 아랍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컸다. 1870년대에 이집트는 현재의 남수단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으며, 1882년 영국이 수단을 침략하였다. 1899년 수단에 대한 영국-이집트 공동통치가 시작되었다. 1947년 영국과 북부 수단 그리고 남부 수단 대표자는 주바회의(Juba Conference)를 통해 북부와 남부를 하나의 식민지로 통합할 것을 합의하였다. 1956년 1월 1일 이집트와 영국으로부터 수단은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수단은 1955년부터 2005년까지 두 번의 남-북 내전이 있었다. 내전 발생 원인은 역사적, 인종적, 종교적 차별과 경제적 착취와 차별을 경험한 남부의 기독교인과 토착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저항이었다. 중앙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이슬람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정부 기능의 약화, 계속 발생하는 쿠데타로 장기간의 정치적인 불안이 남부 사람들로 하여금 반감을 갖게 했다. 수단 1차, 2차 내전이 일어난 총 39년간 남수단에서만 25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50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이 생겼다.
둘째, 1차 내전(1955-1972) 원인과 아디스아바바 협정
1956년 1월 1일 수단은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하였지만 남부와 북부는 한 국가라는 틀에서 공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북쪽 중앙 정부는 아랍계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였으며 남부를 정치와 개발에서 철저히 소외시켰다. 남부 사람들에게 이슬람식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며 이슬람 율법(샤리아)과 문화를 강제적으로 확대시키려 했다. 1차 내전은 1955-1972년까지 진행되었으나, 1972년의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끝나게 되었다. 이 협정은 수단을 연방제와 지역자치제를 혼합한 정치체제로 할 것을 명시했다. 즉, 북부의 중앙정부가 국가안보와 외교권을 보유하고, 남부는 반군이 자체적으로 치안을 통치하도록 한 것이다. 아랍어가 공식 언어, 영어가 주 언어로 채택되었다. 특히 수단 전국에서 아랍-이슬람화 정책을 보류하기로 결정하였다.
셋째, 2차 내전(1983-2005) 원인과 나이로비 협정
수단 제2기의 니메이리(Nimeiri)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969년 5월 25일-1985년 4월 6일까지 수단을 통치하였다. 1983년 4월 23일 니메이리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재차 이슬람정책을 추진하므로 2차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슬람율법(샤리아)을 도입한 이유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신앙과 정권 유지를 위한 통치수단으로 이슬람 율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남수단 반군세력인 SPLM(Sudan People's Liberation Movement 수단인민해방운동)은 수단 정부의 남북 부족 간의 차별정책과 군정, 지나친 이슬람화 정책에 반감을 드러냈다. 또 중요한 유전 지대가 남부에 있으므로 남북 분리를 요구하였다. 2차 내전은 2005년 1월 9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포괄적 평화협정(Comprehensive Peace Agreement, CPA) 체결로 끝났다. 내전 지도자 존가랑(John Garang)이 자치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2005년 7월 의문의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였다. 당시 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3. 남수단의 일반적 배경과 내전 원인
첫째, 정치, 사회, 경제적인 면
남수단은 수단으로부터 2011년 7월 9일 56년간의 투쟁 끝에 독립하였다. 남수단의 공식 국가명은 남수단 공화국(The Republic of South Sudan)이며, 면적은 644㎢(한반도의 2.9배), 인구는 약 1000만 명이다. 국가 형태는 공화국이고, 정치 형태 대통령제이다. 국회의원 의석은 170석, 임기는 4년, 행정 구역 10개주이다. 수도는 주바(Juba)이다. 공용어는 영어, 아랍어이다. 2016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1,139$이다. 종교는 가톨릭, 기독교, 토착종교, 이슬람 등이며, 종족은 딩카족(15%), 누에르족(12%)등 200여 부족이 있다.
남수단 경제는 농업과 목축업에 의존하며, 석유 의존도는 98%이다. 국민의 90%는 하루 1$ 미만으로 살고 있다. 남수단 산업 기반은 매우 열악하며, 유전은 부족 간의 갈등으로 개발 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직물, 설탕, 시멘트 공장 등도 거의 파괴되고 수도 시설도 거의 없는 상태이다. 5세 미만 유아의 사망률이 11%이며, 산모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16년 물가가 1,000% 올라 시장경제는 거의 마비되었고, 부정과 부패, 강도, 절도가 극심하다. 상업은 주로 중국인, 인도인과 아랍인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수출 시장 선점과 저렴한 노동력 확보를 위하여 진출하고 있다.
남수단은 독립한지 6년밖에 되지 않아 중앙의 권력이 지방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실제적으로는 전통 부족 국가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아동사망률 25%, 말라리아 감염률 61%, 영양실조 48%로 열악하다. 성인 문맹률이 약 75%이며, 대부분 방송은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고문, 여성 집단 강간, 방화, 신체 절단 등 끔찍한 만행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2017년 7월 28일 KBS 2TV 오전 8시뉴스는 '유엔(UN) 발표에 의하면 남수단에 현재 1만 8천명의 소년병이 있다'고 전하였다. 소년병들은 공부 대신 정부군에 대한 증오를 세뇌 받고 전선에 내보내져 반군의 총알받이가 되며 각 부족들은 소년병들을 전쟁에 끌어들이고 있다.
둘째, 종교와 문화
수단은 이슬람이 대다수이나 남수단의 종교는 토착 종교(정령신앙), 가톨릭과 기독교가 주를 이룬다. 남수단의 문화는 다양한 언어, 부족, 종교, 음식, 전통이 섞여져 있다. 현 정권은 딩카족 15%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딩카족 사회는 남성중심의 문화이며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한다. 일부다처제이며, 딸을 더 선호한다. 아들은 결혼 시에 신부집에 지참금을 지불해야하지만 딸은 신랑 집에서 지참금을 받는다. 이런 영향은 내전으로 발생한 고아들 중에 여자 아이는 친척과 이웃이 서로 데려가지만, 남자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오랜 내전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거나,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으며 영적 갈급 상태에 빠져 있다. 옥수수 가루를 찐 '우갈리'가 주식이며, 그 외 콩 수프, 찰기 없는 밥, 질긴 소고기이다. 소가 가장 큰 재산이다. 일부다처제가 보편화 되어있다. 소가 많으면 여러 명의 부인을 살 수 있어 소를 증가하는 과정에서 이웃 부족의 소를 훔치거나 빼앗는 과정과 방목지 영역을 두고 벌이는 분쟁이 많다.
셋째, 내전 원인과 양상
2011년 7월 9일 남수단은 독립은 했으나, 내전은 종족과 지역 간의 갈등, 석유지대 이권, 정치적면 등이 얽혀 내부 충돌이 종종 발생하였다. 독립 후에 자립이 힘든 것은 교육, 정치, 경제, 국민의식, 농업, 산업 등의 기반이 거의 없으며, 정권 자체가 나라보다 한 부족의 독재를 위하기 때문이다. 남수단 내전의 결정적 계기는 2013년 12월 14일부터 수도 주바에서 개최된 민족해방위원회(National Liberation Council)회의였다. 2013년 12월 15일 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통령 추종세력과 부통령 추종세력 간의 무력충돌로 수만 명이 죽고, 150여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권력 갈등은 원유 매장에 대한 이권문제와 공무원들이 부패하여 정부 예산을 착복하므로 생겼다. 2016년 남수단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대통령과 부통령 지지세력 간 교전으로 약 300명이상 사망했으며, 난민 25만이 우간다에 살고 있다.
2017년 2월 20일 유엔은 남수단 일부를 기근지역으로 공식 선포했다. 10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며, 어린이 25만 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놓여있다. 내전의 양측 당사자들은 UN등의 구호식량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아 차의 통행이 불편하며 국제구호단체들의 지원 식량이 탈취당하고 있다. 난민 캠프에 수용된 여성 70%가 군·경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2013년 3월부터 UN의 일원으로 한국 한빛부대가 파병되어있다.
4. 과제와 제언
남수단은 반군과 정부군의 전쟁, 부족 간 폭력, 강간, 신체 절단, 방화, 소년병 징집으로 인한 인권유린과 악행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내전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난민들에게는 사회질서가 형성되지 않아 높은 범죄율로 이어져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 오랜 내전으로 가난과 굶주림으로 도둑질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육을 통해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성경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라고 약속하셨다. 한국교회는 남수단 목회자와 그리스도인 지도자 양성 및 훈련,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 교육,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학교, 병원, 상하수도 시설, 도로 등 사회 기반 대부분이 구축되지 않았으므로 필요(felt need)에 따라 도움을 주며 다양하게 접근한다면 변화를 갖고 올 것이다. 한국교회가 남수단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제자 훈련하며 세계선교 비전을 심어 주어야 한다. 남수단의 지식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영어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로 인하여 남수단은 이슬람의 남하를 막는 방어막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아랍어 국가에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많은 나라이다!
이정순 박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중동연구원)